남자축구, 북한 5만관중 이긴 여자축구 투혼 배워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0일 05시 45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북한 일방적 응원 딛고 귀중한 무승부
정신력 부족한 슈틸리케호 값진 교훈


“텔레비전 중계가 이뤄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자축구대표팀이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대결(2018 요르단 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을 극적인 1-1 무승부로 마친 7일 밤, 단장 자격으로 평양에 온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남측 인사들은 여자대표선수들의 투혼에 큰 감동을 받았다. 경기 전 아시아축구연맹(AFC)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을 이길 수 있다면 2010년 U-20 월드컵 3위와 잉글랜드 정규리그 우승 및 ‘올해의 선수’ 등 지금까지 얻은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던 지소연(26·첼시 레이디스)의 각오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경기가 중계됐다면 많은 국민들이 여자축구의 가치를 알고 사랑해줬을 것”이라며 “실력과 기술도 훌륭했지만 정신력이 대단했다. 가슴 찡한 경기였다”고 말했다.

● 여자대표팀의 투혼, 남자선수들도 배워라!

90분 혈투가 끝난 뒤 윤덕여(56) 여자대표팀 감독의 얼굴에선 무승부의 기쁨보다 90분간 5만 관중의 엄청난 열기 앞에서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간 듯한 표정이 묻어났다. 선수들도 그랬다. 교체투입 후 왼팔이 빠졌던 정설빈(27)은 팔을 움켜쥐고 버스에 올랐다. 주장 조소현(29)은 동료 선수를 업고 나왔다. 상대의 가격에 콧등을 다친 골키퍼 김정미(33·이상 현대제철)는 부상 부위에 멍이 든 상태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윤덕여호’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경기 전 무채색 옷을 입은 북한 관중이 황금색 나팔을 손에 쥐고 박수를 치자, 교체명단에 올라 먼저 벤치에 앉은 선수들은 같이 박수치고 미소를 지었다. 전반 5분 북한 선수가 페널티킥을 잡아낸 김정미를 가격하자 수비수 임선주(27·현대제철)가 달려들어 야구의 ‘벤치 클리어링’과 같은 신경전을 펼쳤다. 김 부회장은 “여자축구에서 저렇게 몸싸움하고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었나”라고 반문하며 “초반엔 엄청난 응원소리에 선수들이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잘 싸웠다. 다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뛰었다. 정설빈의 부상도 선수들을 깨운 것 같았다”고 칭찬했다.

김 부회장은 이내 “여자선수들의 투혼을 남자선수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5월 U-20 월드컵에서, 6월 카타르전에서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남자대표팀은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A조 2위를 간신히 지키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으나, 선수들이 멘탈 문제도 심각하다는 것이 축구계의 중론이다. 다른 협회 관계자도 “이날(7일) 경기를 남자대표팀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라고 거들었다.

● “티켓이 왜 한 장?”…“그러니 이렇게 만나는 것 아닙니까?”

무승부였지만 웃은 쪽은 당연히 한국이었다. 남북의 최종 전적이 3승1무로 같을 경우에는 득실차 및 다득점에서 남측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기장과 호텔에서 북한 주민들은 남측 사람들을 향해 “기쁘시겠습니다”란 축하도 건넸다. 김 부회장은 북한축구협회 한은경 부회장과 나눈 얘기를 소개했다. 여성인 한 부회장은 북한축구의 행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5월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도 출마했는데, 한 자리뿐인 AFC 여성위원에 당선될 것이 유력한 형편이다.

김 부회장은 “한 부회장에게 ‘경기 실력을 놓고 보면 남북이 모두 본선(2018 여자아시안컵)에 갈 자격이 된다. 왜 하나만 올라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 뒤 “한 부회장이 ‘그래도 이렇게 같이 경기하니까 선생님도 평양에 한 번 오시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하더라”며 웃었다. 한 부회장은 북한-홍콩전, 한국-인도전이 연이어 벌어진 5일 중계권 및 출입카드 문제 등으로 국내방송사의 그라운드 내 진입을 단호하게 가로막는 경기장 관리인 및 관련 인사들에게 “내가 책임질 테니 들여보내라”고 직접 지시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했다.

평양 |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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