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 ‘부상 트라우마’ 심해 함께 서커스 배우며 극복”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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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댄스 ‘아리랑’ 환상 연기 민유라-겜린 알렉산더 인터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국가대표 민유라(위)와 겜린 알렉산더가 22일 강릉 안목해변에서 올림픽을 끝낸 기분을 피겨 동작으로 표현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국가대표 민유라(위)와 겜린 알렉산더가 22일 강릉 안목해변에서 올림픽을 끝낸 기분을 피겨 동작으로 표현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한국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의 ‘아리랑 커플’ 민유라(23)-겜린 알렉산더(25). 이들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개량 한복을 입고 가수 소향의 ‘홀로 아리랑’ 배경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연기를 펼쳤다. 두 선수가 연출한 가슴 뭉클한 무대는 현장 관중은 물론 수많은 시청자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하지만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겜린과 재미교포 민유라가 아리랑 프로그램을 완성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22일 강릉의 한 커피숍에서 민유라와 겜린을 만나 올림픽을 마친 소감과 숨겨진 뒷얘기들을 들어봤다. 》
 
―민유라-겜린의 ‘아리랑’을 보고 눈물을 보였다는 사람들이 많다.

민유라 “경기 중에도 관중이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뭉클했다. 사실 나도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연기했다. 경기 후 한국 심판도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적 감성을 살리기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무용 전문가를 초빙해 6차례 수업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한국인의 ‘한(恨)’이 담긴 곡을 희망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가 있다.

민유라 “아리랑은 슬픈 곡이지만 연기가 끝났을 때 관중이 느끼는 감정은 희망이기를 바랐다. 과거에 러시아 선수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 음악을 사용했는데 마지막에 총소리가 나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을 표현해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다. 이 때문에 슬픔보다는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자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계속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연기했고 슬픈 표정보다는 밝은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리랑을 올림픽에서 한 번 더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다.

민유라 “갈라쇼에서 ‘깜짝 선물’을 준비는 했는데…. 국제빙상경기연맹(ISU)으로부터 갈라쇼 초청장을 받지 못해 아쉽다. 사실 가수 소향이 직접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면 우리가 거기에 맞춰 연기를 하려고 했다. 한복도 개인전 때와 다른 것을 준비했는데….”

겜린 “한국 관중에게 또 (아리랑 연기를)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이스쇼가 있으면 당장 달려오겠다.”

―팀 이벤트 경기 때 민유라 의상의 어깨 끈이 풀리는 ‘사고’가 있었는데….

민유라 “‘첫 올림픽 무대에서 하필 옷이 벗겨지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등 쪽에 바람이 느껴져 ‘이건 뭐지’라고 생각했다. 겜린에게 ‘계속 (연기를) 해야 돼?’라고 묻자 겜린이 ‘내가 (옷을) 잡아줄게. 계속 가자’고 했다.”

겜린 “둘이 근접해서 연기를 할 때는 내가 떨어진 옷 부위를 잡아줬다. 하지만 떨어져 연기를 할 때는 속으로 옷 상단부가 붙어 있길 바라며 ‘제발 떨어지지 마라’고 수십 번 빌었다. 하하.”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민유라 “1년 훈련비용이 개인당 1억 원 정도다. 둘이 합치면 2억 원이다. 과거에는 돈이 없어서 코치 없이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너무 힘들었다. 훈련비 마련을 위해 겜린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피겨 레슨을 했고, 나는 강아지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겜린 “나는 부모님의 노후 자금까지 지원받았다. 올림픽 경기가 끝나자 어머니가 펑펑 울면서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반드시 성공해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돌려드리고 싶다.”

겜린 알렉산더(오른쪽)와 민유라가 겜린의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2일 한국에서 생일을 맞이한 겜린은 “올림픽이 열린 도시 강릉에서 뜻깊은 생일을 보내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겜린 알렉산더(오른쪽)와 민유라가 겜린의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2일 한국에서 생일을 맞이한 겜린은 “올림픽이 열린 도시 강릉에서 뜻깊은 생일을 보내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훈련비용 모금 운동은 잘되고 있나(민유라와 겜린은 미국 온라인 모금 사이트인 ‘고 펀드 미’에 사연을 올려 ‘민겜린코리아’라는 이름으로 2016년 12월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겜린 “사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우리가 계속 팀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다. 모금이 잘되지 않으면 팀이 해체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올림픽을 치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기금을 냈다는 e메일이 가끔 왔다. 그런데 개인전 프리댄스가 끝난 이후에는 매일 수십 명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현재 6만 달러 정도가 모였다.”

―흥이 넘치는 모습으로 인기가 많은데 광고를 찍어볼 생각은 없나.

민유라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흥유라’ 성격에 맞는 광고면 좋겠다. 사실 우리끼리는 매일 식당에서 장난을 치면서 ‘○○커피’라고 외치며 커피 광고 흉내를 낸다.”

겜린 “많은 광고에 출연한 김연아가 롤모델이다. 하하. 농담이다. 사실 부럽기는 하다.”

―훈련비용 외에 어려움은 없었나.

민유라 “과거 겜린이 아닌 다른 파트너와 리프트(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들어 올리는 것) 동작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적이 많아 공포심이 있었다. 부상으로 앞니 두 개가 부러진 적도 있다. 의치를 한 상태인데 한 개는 다시 빠져서 새로 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바꾸는 데 1000달러가 필요하다고 해서 포기했다.”

―겜린이 민유라의 ‘리프트 공포’를 사라지게 했다고 들었다.

겜린 “민유라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올림픽 무대에 서게 도와준 파트너다. 민유라를 위해 그가 넘어질 때는 내가 앞으로 빠르게 몸을 던져 쿠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공포심을 극복시키기 위해 함께 서커스 훈련을 받기도 했다.”

―겜린은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겜린 “아직 한국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20% 한국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베이징 올림픽 때 다시 만나면 그때는 한국말로 인터뷰하겠다.”

―겜린이 한국 이름을 짓는다면….

겜린 “이름은 ‘유진(eugene)’이 좋을 것 같다. ‘천재(genius)’와 비슷해 똑똑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성은… 겜린과 비슷한 감으로 하겠다.”

민유라 “딱 좋은 것 같다. 감유진!”

―둘이 사이가 너무 좋아서 팬들은 연인 관계로 의심하는데….

민유라 “아이스댄스팀 중에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가 헤어진 뒤 파트너십이 깨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우리는 그저 친구이고 ‘비즈니스 파트너’로 서로를 믿는 사이다.”

겜린 “우리는 그냥 오빠와 여동생 같은 사이일 뿐이다.”

―먼 훗날 은퇴를 하게 되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민유라 “겜린과 같이 한국에서 주니어 아이스댄스팀들을 지도할 것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한국에도 아이스댄스팀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것을 출발로 해서 한국 아이스댄스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현재 민유라-겜린 조는 한국의 유일한 시니어 아이스댄스팀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우연히 커피숍을 찾았다가 민유라-겜린 조를 알아본 손님들은 “민유라 씨, 아리랑 잘 봤어요” 등 저마다의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인기 스타’로 거듭난 민유라는 “4년 동안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켜 더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겜린은 한국말로 강렬하게 올림픽 출전 소감을 밝혔다. “대박!”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김동욱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민유라#겜린#아이스댄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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