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성화, 우리 고장선 어떻게 맞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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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D-108]올림픽 밝히는 성화, 심해-북극-우주 다녀오기도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서 부활, 그리스 채화→개최지 봉송 방식… 1936년 베를린 대회서 첫 채택
겨울은 1952년 오슬로 대회 처음

《24일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는 11월 1일 대한민국 관문 인천에서 국내 봉송을 시작한다. 성화는 전국 17개 시도를 돌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 등을 전 세계에 전한다. 전국 각지에서 로봇과 케이블카 거북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화가 봉송된다. 성화가 지나는 지역마다 다채로운 축제도 준비돼 있다. 성화의 주요 코스와 예정 날짜, 성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알아본다.》
 

저는 올림픽 성화(聖火)입니다. 성스러운 불이란 뜻이지요. 1948년까지만 해도 ‘올림픽의 불(Olympic Fire)’이라 불렸습니다. ‘성스러운 올림픽의 불(Sacred Olympic Fire)’, 즉 성화란 공식 이름을 갖게 된 건 1950년 올림픽 헌장에 공식적으로 명기되면서부터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불은 신들과 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불은 제우스와 헤라 등 여러 신의 신전을 항상 밝히고 있었지요.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피아에서 고대 올림픽이 열릴 때도 저는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중세를 거치며 잠들었던 제가 되살아난 것은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름 올림픽이었습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주 경기장 상단에 설치한 중계탑 위에 성화를 밝힌 것이지요.

하지만 고대 올림픽처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태양광선을 이용해 채화를 한 뒤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까지 성화봉송을 한 첫 대회는 193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었습니다. 대회 조직위원장이던 카를 디엠 박사가 예전 고대 그리스에서 열렸던 ‘람파데드모리아’라는 횃불 릴레이 경주를 모티브로 고안했지요.

3075명의 주자가 1km씩 3075km를 나눠 달린 이 성화봉송은 나치 독일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돌프 히틀러는 발칸반도 여러 나라 청년들을 성화봉송 주자로 동원했고, 불과 몇 년 후 이 나라들은 독일의 침략 대상이 되었지요.

이 대회 이후 그리스에서 시작해 개최 도시로 이어지는 성화봉송은 올림픽의 전통이 됐습니다. 성화봉송은 각 올림픽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하게 됐지요.

겨울 올림픽 성화봉송의 역사는 약간 다릅니다. 겨울 올림픽에서 성화봉송이 가장 먼저 시작된 대회는 1952년 열린 노르웨이 오슬로 올림픽입니다. 채화지는 그리스 올림피아가 아니라 스키의 발상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모르게달 계곡이었습니다.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성화는 로마에서 채화됐지요. 겨울 올림픽 성화가 여름 올림픽처럼 올림피아에서 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올림픽부터였습니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성화는 24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후 일주일간 그리스 전역을 돌게 됩니다. 그때까지 저는 그리스 올림픽위원회 소속입니다. 31일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평창 조직위원회에 인수된 뒤에야 비로소 평창의 불이 됩니다.

그동안 주최국들은 자국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봉송 루트와 봉송 수단을 사용해 왔지요.

그 덕분에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손엔 성화를, 다른 한손으로 수영을 하는 주자의 손에 들려 마르세유 앞바다를 헤엄치기도 했고(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올림픽),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도록 준비한 뒤 다이버 손에 들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바닷속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 때는 북극에도 다녀왔습니다. 콩코드 여객기를 타고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한 적도 있고(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올림픽), 위성을 통해 불꽃을 전송한 적도 있습니다(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저는 아니지만 성화봉은 우주까지 나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우주비행사가 우주 구경까지 시켜주었지요.

평창 성화는 다른 나라엔 가지 않고 한국 내에서만 릴레이를 할 예정입니다. 역대 최장 거리 성화봉송(13만7000km)이었던 2008년 중국 베이징 여름 올림픽의 여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는 곳곳에서 숱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스 채화 현장부터 기습 시위가 발생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시위대에 의해 성화가 꺼지기도 했지요. 티베트 사태와 중국 내 인권 문제 등이 겹치며 시위와 폭력이 난무했어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후 나라 사이를 오가는 성화봉송을 금지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29년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활활 타오른 저의 형님을 만날 일이 기대됩니다. 형님이 지금 어디 있냐고요? 서울 올림픽 성화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서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고 하네요.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평창올림픽#성화 봉송#올림픽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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