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평창]‘꼴찌’ 설움 날리고 金 후보로… 썰매 ‘3총사’ 새 역사 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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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한국판 ‘쿨 러닝’
봅슬레이 정상 원윤종-서영우
스켈레톤 세계랭킹 2위 윤성빈
“외국선수들 처음엔 우리경기 외면
이젠 훈련장면까지 비디오 촬영”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사상 첫 번째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세 선수. 이미 세계 수준으로 기량이 올라온 데다 올림픽 코스를 미리 수백 번 연습하고 탈 수 있는 ‘안방 어드밴티지’까지 감안하면 메달 도전은 현실이 될 날만 남았다. 왼쪽부터 원윤종-서영우(이상 봅슬레이), 윤성빈(스켈레톤). 동아일보DB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사상 첫 번째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세 선수. 이미 세계 수준으로 기량이 올라온 데다 올림픽 코스를 미리 수백 번 연습하고 탈 수 있는 ‘안방 어드밴티지’까지 감안하면 메달 도전은 현실이 될 날만 남았다. 왼쪽부터 원윤종-서영우(이상 봅슬레이), 윤성빈(스켈레톤). 동아일보DB
“당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결심하는 그 순간이다.”

변화 심리학자 앤서니 로빈스는 자기 책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 이렇게 썼다. 한국 봅슬레이 간판 원윤종(32·강원도청)-서영우(26·경기BS연맹)가 자기들 마음에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운 것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결심한 그 순간이었다. 원래 체육 교사를 꿈꾸던 성결대 체육교육학과 재학생이던 두 선수는 2010년 우연히 봅슬레이 국가대표를 뽑는다는 공문을 접하게 됐다. 원윤종은 “국가대표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꿈 아닌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신청했는데 덜컥 선발이 됐다”고 말했다. 인천체고 재학 시절까지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서영우도 “공문에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보니 승부욕이 살아나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회상했다.

원윤종·서영우
원윤종·서영우
당연히 시작은 미약했다. 2010년 11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북아메리카컵에 처음 참가했을 때는 대기실에 다른 나라 선수가 오면 자리를 내줄 정도로 자신감도 부족했다. 둘은 3년 뒤 같은 장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두 선수는 지난 시즌 세계랭킹 1위보다 이 대회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영우는 “사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에도 육상처럼 포기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강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냈는데 우승을 한 거다. 그때부터 국내 첫 봅슬레이 실업팀(강원도청)도 생기고 관심도 받았다. 그때부터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윤종도 “이제 그 트랙이 우리 집처럼 편안해졌다”고 덧붙였다.

2013∼2014시즌을 19위로 마감한 두 선수는 2014∼2105시즌 세계랭킹을 10위까지 끌어올렸고 지난 시즌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 원윤종은 “처음에는 우리가 경기를 하면 외국 선수들은 보지도 않았다. 이제는 경기뿐 아니라 훈련하는 장면까지 세세히 살펴본다. 아예 비디오 촬영을 해가는 일도 많다”고 전했다. 서영우는 “우리를 찍고 있는 걸 보면 어쩐지 통쾌하고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며 웃었다.

윤성빈
한국 스켈레톤 간판 윤성빈(22·한국체대)도 비슷한 설움을 당한 적이 있다. ‘호랑이 연고’가 문제였다. 스켈레톤 선수들은 경기 전에 웝업(warm up) 크림을 바른다. 윤성빈은 “후끈후끈한 느낌이 좋다”며 뚜껑에 호랑이 그림이 있는 연고를 이 웜업 크림으로 발랐다. 처음에는 외국 선수들이 “냄새가 지독하다”며 질색했다. 윤성빈은 “내 성적이 점점 좋아지니까 이제는 그 연고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고 그 연고를 바르는 선수가 점점 늘어났다”며 웃었다.

현재 남자 스켈레톤 세계랭킹 2위 윤성빈은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울 수 있던 이유로 “꾀부리지 않은 것”을 꼽는다. 체대 진학을 꿈꾸다 고교 3학년이던 2012년 여름 선생님 권유에 따라 스켈레톤을 시작한 윤성빈은 “운동 방법도 몰랐고 정보도 몰랐다.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것을 아니까 훈련이 힘들어도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감독 코치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묵묵하게 따른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판 ‘쿨 러닝’을 꿈꾸는 세 선수의 목표는 역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시상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바람이 해피 엔딩으로 끝날지는 1년 뒤가 되어야 진짜 해답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이 한국 썰매에 빛나는 새 역사를 쓰고 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운명은 이들이 결심한 그 순간 이미 결정됐기 때문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봅슬레이#스켈레톤#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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