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시각장애스키와 ‘연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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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나는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다. 그녀는 나의 가이드 러너다. 그녀의 목소리만 믿고 나는 달린다. 때론 시속 100km의 속도로, 보이지 않는 기문들 사이를…. 우리의 연결에 장애는 없다.”

 한 이동통신사의 캠페인 광고가 화제다. 감동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장애인체육 관계자들의 반응은 흥분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광고에는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스키 국가대표인 양재림(27)과 그녀의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21)가 등장한다. 고운소리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출신이다.

 7개월 만에 몸무게 1.3kg으로 태어난 양재림은 미숙아 망막병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오른쪽 눈도 바로 앞 사물만 알아볼 수 있다. 엄마는 시각장애인 딸이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 스키를 가르쳐 줬다. 재능이 있었던 양재림은 2011년 2월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시각장애스키에 출전하며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큰 기대를 받으며 2014년 소치 겨울 패럴림픽에 나갔지만 아쉽게 4위를 했다. 자신의 기록을 확인한 뒤 보이지 않는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양재림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양재림의 가이드 러너는 고운소리가 아니었다. 양재림은 그동안 여러 차례 가이드 러너를 바꿔야 했다. 금전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시각장애스키 선수와 가이드 러너는 1년에 300일 이상을 함께 지내며 호흡을 맞춘다. 안정적인 직업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해 줄 가이드 러너를 만나기 어렵다. 다행히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지난해 8월 장애인스키팀을 창단하면서 양재림과 고운소리를 함께 받아들인 덕분에 둘은 단단히 ‘연결’될 수 있었다.

 이 광고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는 1년여에 걸친 대한장애인스키협회의 노력이 있었다. 이 단체 이수영 이사와 김승모 이사 등이 양재림과 고운소리를 콘셉트로 한 후원 제안서를 만들어 여러 기업을 돌며 부지런히 발품을 판 결과 장애인 선수가 지상파 광고에 등장했다. 장애인 스키대표팀 코치이기도 한 양성철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고운소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뒤 양재림의 기량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광고를 촬영하면서 고운소리가 느낀 점이 많은 것 같았다. 가이드 러너의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알았다고나 할까…. 이 광고를 통해 많은 분들이 패럴림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장애인 선수들도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이동통신사는 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까지 양재림과 고운소리를 후원하기로 했다. 빡빡했던 훈련비 사정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1992년 알베르빌(프랑스) 대회부터 겨울 패럴림픽에 출전한 한국이 설상에서 메달을 딴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대회가 유일하다. 많은 이들의 관심 덕분에 만들어진 이 ‘연결’이 2018년 평창에서 양재림과 고운소리의 메달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시각장애인#양재림#가이드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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