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함께 두 바퀴, 안 보여도 달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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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장애인亞경기 출전 유충섭씨
2002년 시력 잃었지만 사이클 입문
왕년의 스타 김동환씨와 한 조 이뤄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탠덤 사이클에서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앞쪽)는 파일럿 역할을 하며 시각 장애가 있는 유충섭 씨와 호흡을 맞춘다. 김 대표와 유 씨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프로사이클 제공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탠덤 사이클에서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앞쪽)는 파일럿 역할을 하며 시각 장애가 있는 유충섭 씨와 호흡을 맞춘다. 김 대표와 유 씨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프로사이클 제공

“장애가 있다 보니 다른 아빠들처럼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아빠는 최선을 다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18일 개막하는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사이클에 출전하는 유충섭 씨(46·사진)는 딸 채림 양(14), 아들 대경 군(6)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시각 장애인이기에 활동적으로 놀아주질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당당히 두 자녀 앞에서 도로를 누비게 된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인은 아니다. 2002년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볼링을 통해 운동과의 끈을 이어갔다. 볼링을 더 잘 치고 싶었던 그는 하체 단련의 필요를 느껴 사이클을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인천장애인사이클연맹 관계자가 그에게 사이클로의 전향을 권유했다.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하체는 강해졌고 실력은 늘어갔지만 한계가 있었다. 실내 훈련은 가능했지만 위험한 야외에서는 자전거를 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그에게 2년 전부터 눈이 되어 준 사람이 한국 사이클의 전설적인 스타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52)였다. 시각 장애인용 탠덤 사이클(2인용 사이클)은 비장애인 선수와 장애인 선수가 한 자전거를 탄다. 비장애인 선수가 파일럿이 돼 앞자리에 앉고, 뒷자리의 장애인 선수와 호흡을 맞춘다.

김 대표는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사이클 선수였다. 대학교 1학년이던 1981년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동아사이클대회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고, 1982년과 1984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개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최근까지도 동호인들이 출전하는 투르 드 코리아 스페셜 부문에서 우승을 밥 먹듯이 한다.

이번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둘은 서울 송파구에 원룸을 잡아 두고 한 달간 맹훈련을 했다.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김 대표에게나 컴퓨터 방문 강사를 하고 있는 유 씨 모두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번 대회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유 씨는 “10여 년 전 장애를 가지게 된 뒤 한동안 상쾌하게 달리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사이클을 시작한 뒤 새삼 바람을 가르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을 향해 달리는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100살(한국 나이 기준)이 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사이클#유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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