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빼고 빼닮은 두 명장 “수비농구가 롱런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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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프로 최장수 유재학-위성우 감독

4년 재계약으로 ‘감독 10년’ 반열에 올라서게 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왼쪽)과 그의 스승이자 롤모델인 ‘만수’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이 모처럼 사석에서 만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건배를 했다. 애주가인 유 감독과 술을 한방울도 입에 못 대는 위 감독은 술에 있어서는 상극이지만 코트 위 독기만큼은 똑 닮은 국내 남녀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명장이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4년 재계약으로 ‘감독 10년’ 반열에 올라서게 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왼쪽)과 그의 스승이자 롤모델인 ‘만수’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이 모처럼 사석에서 만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건배를 했다. 애주가인 유 감독과 술을 한방울도 입에 못 대는 위 감독은 술에 있어서는 상극이지만 코트 위 독기만큼은 똑 닮은 국내 남녀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명장이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부임 첫해부터 시작해 통합 6연패를 이끈 위성우 감독(47)은 지난달 4년 재계약을 했다. 2022년까지 계속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다. 여자프로농구에서 강산이 변할 세월 동안 줄곧 벤치를 지킨 건 위 감독이 처음이다.

그에 앞서 프로농구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55)이 2015년 챔프전 3연패와 함께 프로농구 최다우승(5회)을 거두고 5년 재계약해 한 팀에서만 무려 16년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4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남녀 농구 대표팀 동반 금메달을 이끌었던 두 ‘장수 감독’이 최근 위 감독의 재계약을 축하하며 오랜만에 사석에서 만났다.

4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얻었지만 위 감독은 해마다 절박한 심정으로 코트에 나서는 듯 보였다. “늘 올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는데 그때마다 ‘안 되면 관두지’ 생각해요. 4년 계약했다고 4년 뒤가 봐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래서 하수인가 봐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 감독은 “나도 그래. 그게 속 편하지 않니?”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정작 유 감독은 1997년 프로농구 출범 후 20년 넘게 한 시즌도 쉰 적이 없다. 직장인이라면 근속휴가를 두 번은 거뜬히 받았을 세월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걸 좋은 대우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없어요. 오래 하면 좋죠. 물론 한 타임 정도 쉬고 싶은 생각은 있었어요. 농구단에 안식년 같은 거 6개월이라도 해볼 수 없냐고 물었는데 그런 소리 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위 감독은 2004년 은퇴 직전 한 시즌을 유 감독 아래서 보냈다. 위 감독은 “마지막 감독님이라 그런지 임팩트가 가장 커요. 지금도 그때 1년 동안 배운 수비를 우리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있고요”라고 했다. 유 감독은 비록 짧은 사제관계였지만 그 후로 위 감독의 우승 때마다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낸다.

술을 못 하는 위 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유 감독에게 일본 전지훈련 때 선물 받았던 귀한 술을 전했다. 유 감독은 “처음 모비스 감독 맡고 선수 상견례 때 내가 가득 따라준 술을 먹고 위 감독이 실려 갔던 때가 엊그제 같다. 다음엔 내가 큰 선물을 해야겠다”며 웃자 위 감독은 “그냥 감독님 오래 하시는 게 선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롱런하는 두 감독에게는 우승 제조기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이 친구(위 감독)가 나와 비슷한 게 지는 거 싫어하고 눈앞에서 딴짓하는 거 못 보고 굉장히 FM이죠. 주어진 시간에 완성이 안 되면 못 버텨요. 자꾸 닦달하고 만들어 내려고 하고….”

특정 선수 한두 명에 의존하기보다는 수비에 방점을 둔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50점을 넣는 르브론 제임스 같은 선수라도 사양한다’는 유 감독은 “공격전술이 좋다고 우승하는 건 아니다. 거기서 감독의 능력은 오십보백보다. 공격은 창의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수비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비스와 우리은행은 모두 짙은 염색을 하거나 큼지막한 문신을 한 선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는 고리타분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럴 시간과 에너지를 코트에 쏟으라는 게 둘의 공통된 생각이다. 위 감독은 “쌍꺼풀은 괜찮은데 신체 접촉이 많은 코트에서 코는 예민한 부위여서 주의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양)동근이가 젊어서 머리를 노랗게 하고 왔다면 어땠을까. ‘너무 세다. 좀 빼라’ 이 정도 했을까? 박혜진이 머리 노랗게 하고 오면 어떨 것 같아?” 유 감독이 묻자 위 감독은 “비슷하게 말했을 것 같다. 연차가 있으니…”라며 웃었다.

두 감독은 짧은 휴가기간을 끝내고 다시 치열한 승부의 세계로 돌아간다. 두 팀 모두 코치진을 재구성해 분위기를 바꿨다. 우리은행은 연고지 충남 아산에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체력 훈련에 들어갔다.

새 출발을 다짐하며 건배를 한 두 감독은 서로를 향한 덕담과 함께 나중을 기약했다.

“위 감독은 색깔이 분명해요. 한국 농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롤모델은 유재학 감독님이시기 때문에. 나중에 은퇴하시면 정말 지도자를 위한 지도자를 꼭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임보미 bom@donga.com·김종석 기자
#여자프로농구#위성우#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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