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영 기자의 보너스 원샷]농구 亞선수권 참패, 그저 ‘높이’ 탓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흐름 바꿀 ‘슛도사’ 부재도 원인
KBL 지난 시즌 3점슛왕 허일영, 경기당 평균 1.8개 성공에 그쳐
이충희-문경은 등 전설의 슈터들 “흔들림 없는 득점 비결은 연습뿐”

“요즘 선수들은 왜 완전한 기회에서도 3점슛을 못 넣을까요?”

현역 시절 ‘람보 슈터’로 남자 농구 슈터 계보를 이었던 문경은 SK 감독에게 최근 던진 질문이다. 최근 프로농구계의 가장 큰 근심은 경기 흐름을 바꿔 놓을 만한 배포 큰 슈터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프로농구에서는 수비가 없는 ‘노마크’ 상황에서 던진 슈팅이 림도 건드리지 못하는 민망한 상황까지 자주 연출된다.

지난 시즌 3점슛 성공 1위는 오리온의 허일영이었다. 41경기에서 74개를 성공시켜 경기당 평균 1.80개의 3점슛을 넣었다. 성공률(50%)은 높았지만 슛 시도는 한 경기에 4개꼴도 안 됐다.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 ‘사랑의 3점 슈터’ 정인교(당시 나래)가 경기당 평균 4.33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21경기에서 91개를 넣은 정인교의 당시 3점슛 성공률은 48.15%였다. 1997∼1998시즌 문경은(당시 삼성)은 경기당 평균 3.76개의 3점슛을 기록했다. 169개를 넣은 문경은의 성공률은 42.45%였다. 많이 던지고 확률도 높았다. 3점슛 1위의 경기당 성공 개수가 1개대로 내려앉은 것은 2009∼2010시즌부터다. 정확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3점슛 성공률 40%를 넘긴 선수가 1997∼1998시즌에는 9명이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허일영, 이승현(오리온), 정영삼(전자랜드) 등 3명이었다.

프로농구 통산 3점슛 1669개로 역대 1위인 문 감독은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연세대 1학년 시절 고려대와의 정기전에서 수비수를 제치고 첫 3점슛을 던졌는데 공이 림을 그대로 넘어갔어요. 당시 벤치에서 최희암 감독님이 ‘팔에 힘을 빼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창피했는지 그 뒤로 다리가 흔들려도 팔은 고정시켜 슛을 던지는 연습을 수없이 했죠.” 문 감독은 “슛 연습에서 중요한 건 집중력인데 요즘 선수들은 하루 1000개에서 300개로 연습량을 줄여줘도 슛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던지는 습관이 몸에 잘 배어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원조 ‘슛도사’ 이충희 전 동부 감독(현 KBL 기술위원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전 감독의 대답도 같았다. “다양한 수비 상황에 따라 무조건 움직이면서 슛 연습을 했다. 내가 현역 시절 뛰었던 센터들은 직접 득점을 올리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비수들이 집중적으로 슈터들을 봉쇄했고 그것을 연습으로 이겨내야 했다.”

외국인 선수의 득점 비중이 높아진 데다 이전보다 수비 시스템이 더 좋아진 영향도 있지만 ‘슛도사’가 실종된 데에는 선수들의 노력 부족도 큰 원인이 된 것이다. 실제 ‘슛 연습을 얼마나 하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거나 수비수를 달고 외곽 슛을 쏠 수 있는 국내 선수는 조성민(kt) 정도라는 것이 농구계의 평가다.

3일 끝난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이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을 두고 대부분 높이의 열세를 지적한다. 하지만 외곽에서 20점 내외의 득점을 꾸준하게 해줄 슈터가 부족했던 것도 주요한 패인이다. 중국과 이란은 외곽에서 조성민만 철저하게 틀어막았고, 조성민이 막히면서 높이에서 열세인 센터들도 경기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높이로 중국과 이란에 맞서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슛도사’들이 있었던 시절이 그래서 더 그립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