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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이승엽의 23년’을 말한다 ②‘인생 라이벌’ 우즈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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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이승엽의 23년’을 말한다 ②‘인생 라이벌’ 우즈와의 만남

정재우 기자 입력 2017-08-18 05:30수정 2017-08-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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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오른쪽)과 타이론 우즈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과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홈런 전쟁을 치렀다. 5년간의 KBO리그 시절 두산 유니폼만 입었던 우즈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도 이승엽의 아성을 위협했다. 두 거포는 2006∼200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간판타자로 활약하며 세기의 대결을 이어갔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국민타자’ 이승엽(41)이 마침내 은퇴한다.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뒤로 23년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숱한 불멸의 대기록과 영광의 기억이 함께했다. 한 시절을 주름잡던 대스타들을 보며 그가 성공을 꿈 꾼 것처럼, 지금은 ‘미래의 이승엽’을 머릿속에 그리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40년을 바라보는 KBO리그, 100년을 훌쩍 넘긴 한국야구에서 그 누구보다 위대한 타자였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는 21세기 한국야구의 최고 스타로 기억될 이승엽의 발걸음을 매주 주말판을 통해 되돌아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② 동반자로 기억될 ‘인생 라이벌’, 우즈를 만나다!

이승엽은 프로 23년간 독보적 발자취를 남겨왔다. 한국에서 보낸 15년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그에게도 난형난제의 호적수가 한 명 있었다. 타이론 우즈(48·미국)다. 이승엽의 전성기에도 우즈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둘은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기술의 이승엽’과 ‘힘의 우즈’가 맞붙어 역대급의 흥미진진한 홈런 레이스를 펼쳤다.

‘선의의 경쟁’은 서로에게 큰 자극이 된다. ‘라이벌’로 쓰고 ‘동반자’로 읽을 수 있다. 이승엽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한때는 우즈를 라이벌로 의식하고 넘어서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승엽은 일본 시절의 우즈를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치켜세웠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한국에서 막 오른 ‘왕좌의 게임’ 1탄

우즈는 이승엽보다 일곱 살 많다. KBO리그에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 OB(현 두산)와 계약하고 한국에 왔다. 그 전까지는 메이저리그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저 그런 선수였다. 반면 이승엽은 1997년 홈런왕(32개)과 타점왕(114개)에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휩쓸었다. 20대 초반에 리그를 평정한, ‘승천하는’ 용이었다.

탄탄대로 같던 이승엽의 앞길을 가로막은 이가 우즈다. KBO리그에 데뷔한 1998년 홈런(42개)-타점(103개) 1위에 정규시즌 MVP를 석권했다. 1년 전 이승엽의 자리를 고스란히 앗아갔다. 이승엽은 38홈런, 102타점으로 모두 2위에 그쳤다. 일본으로까지 이어진 숙명적 대결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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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은 1999년 꿈의 50홈런 고지를 밟으며 우즈에게 곧바로 설욕했다. 타점도 당시로선 역대 최다기록이었다. 홈런(54개)과 타점(123개) 타이틀 모두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우즈도 34홈런(7위), 101타점(10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이승엽에게 크게 못 미쳤다.

이승엽은 2001년과 2002년에도 홈런왕에 등극하며 한 발짝 앞섰다. 2001년과 2002년 이승엽은 39홈런과 47홈런, 우즈는 34홈런(3위)과 25홈런(8위)을 터트렸다. 현대 박경완(40개)이 홈런왕을 차지한 2000년에만 39개(2위)의 우즈가 36개(4위)의 이승엽을 간발의 차로 제쳤다.

이처럼 한국에서 5년간 우즈와의 홈런 전쟁에선 이승엽이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2001년 우즈는 이승엽에게 좀처럼 잊기 어려운 쓰라림을 안긴다.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까지 거머쥔 것이다. 이승엽도, 삼성의 다른 모두도 한국시리즈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던 때라 더욱 짙은 여운을 남겼다.

1998년의 충격을 이듬해 곧장 극복했듯이 이승엽은 다시 한 번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기적적인 동점 3점포를 터트리며 삼성에 우승트로피를 선사했다.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도, 이승엽도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지난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스리런 홈런을 친 이승엽.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요미우리 VS 주니치의 경쟁관계까지 더해진 2라운드

우즈가 2003년 요코하마와 계약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자, 이승엽도 2004년 지바롯데 유니폼을 입고 일본으로 떠나갔다. 이승엽은 첫 해 고전했지만, 우즈는 달랐다. 2003년 40개, 2004년 45개의 아치를 그리며 2년 연속 센트럴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이승엽이 2006년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우즈와의 운명적 재회가 이뤄졌다. 그 사이 우즈도 요미우리의 라이벌 주니치의 일원으로 변신했다. 2006시즌을 앞두고는 한국은 물론 일본 언론도 둘의 경쟁에 주목했다. 일본 매체들 또한 KBO리그 시절 이승엽과 우즈의 경쟁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두 거포가 하필이면 요미우리와 주니치를 대표하는 타자로 만났으니 더욱 눈길을 모았다.

9월 초만 해도 이승엽의 홈런왕 등극은 유력해 보였다. 이승엽은 그해 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타를 휘두른 기세를 이어가며 요미우리의 4번타자를 굳혔다. 우즈를 비롯한 경쟁자들과의 간격을 꾸준히 3~4개차로 유지하며 홈런왕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이승엽이 9월 18일 히로시마전에서 40홈런을 쏘아 올린 뒤로 침묵하면서 우즈가 맹렬히 추격했다. 결국 우즈가 9월 28일 요코하마전에서 40·41호 홈런을 뽑아내며 추월했다.

2006시즌 최종 성적에서도 우즈가 홈런(47개)-타점(144개) 1위를 차지했다. 이승엽은 홈런(41개) 2위, 타점(108개) 4위였다. 팀 성적에서도 주니치(1위)가 요미우리(4위)를 앞질렀다. 8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이승엽이 가장 빛나던 때였지만, 우즈와 주니치의 그늘에 살짝 가려졌다.
2007년은 여러모로 아쉬운 해였다. 이승엽은 왼손 엄지 부상에 시달리며 30홈런, 74타점에 그친 반면 우즈는 35홈런, 102타점을 기록했다. 팀 성적에서도 희비가 교차했다. 정규시즌에선 요미우리가 우승, 주니치가 2위였다. 그러나 일본시리즈 진출팀을 가리기 위한 대결(클라이맥스 2스테이지)에선 주니치가 웃었다. 특히 3차전 4회말 이승엽 타석 때는 주니치 투수 나카타 겐이치가 몸쪽 위협구를 던지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는데, 다른 누구보다 우즈가 격하게 반응해 한일 양국에서 모두 구설에 올랐다.

요미우리 시절 이승엽-주니치 시절 우즈(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이승엽에게 라이벌은?

16일 대구 넥센전을 앞둔 이승엽에게 라이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화두는 자연스레 우즈에게로 옮겨갔다. 이승엽은 “과거에는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힘들거나 지칠 때 스스로를 이기기 위해 훈련하다 보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선수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면 거기까지만 하고 만다”고 밝힌 뒤 그 ‘계기’를 묻자 주저 없이 “1998년에 우즈한테 지고 나서는 우즈를 목표로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답했다.

이승엽의 얘기는 계속됐다. 그는 “일본에선 우즈가 한 단계 위라고 생각했다.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즈의 홈런존은 우측 폴에서 좌측 폴까지 넓다. 한국에 와서 야구가 늘었다. 초기에는 몸쪽에 약점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면서 진짜 강타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2007년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2스테이지에 대한 기억도 또렷했다. ‘우즈가 더 경계하고 자극했던 것 같다’는 말에 “2007년인가 그렇다. 그 때는 플레이오프니까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즈는 역시 파워가 뛰어나다”며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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