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테크니컬 디렉터가 한국축구에 뿌리 내리기 위한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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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월 18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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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 디렉터(TD)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지만 국제 축구계에는 널리 활용되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소속 팀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하는 TD는 최근 홍콩 생활을 마치고 대한축구협회에서 활동하게 된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의 입에서도 
등장했다. 스포츠동아DB
테크니컬 디렉터(TD)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지만 국제 축구계에는 널리 활용되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소속 팀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하는 TD는 최근 홍콩 생활을 마치고 대한축구협회에서 활동하게 된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의 입에서도 등장했다. 스포츠동아DB
최근 몇 년간 한국축구의 기상도는 흐림이다. 국가대표팀이나 연령별 대표팀, K리그, 여자축구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개운치가 않다. 그렇다고 퇴보했다고 하기엔 지나치다. 기대만큼의 성과를 못낸 건 사실이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반성도 하고, 대안도 찾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띈 키워드가 테크니컬 디렉터(Technical Director·이하 TD)다.

대한축구협회 김판곤(48)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이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용어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라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축구협회에서 자신의 역할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축구는) 테크니컬 디렉터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진단했다. 쉽게 말해 TD는 팀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다. 이 그림을 잘 그려야 축구가 발전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축구의 정체 원인이 장기적인 비전 부재와 관리 부실이라고 생각해오던 차에 이런 얘기를 들으니 솔깃했다.

김 위원장은 ‘홍콩의 히딩크’로 불린다. 6년간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4년부터는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겸임하며 홍콩축구의 큰 그림을 그렸다. 각 연령에 적합한 훈련을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로드맵을 만들었다.

후한 평가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도 그의 경험을 높이 샀다. 김 위원장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실시한 코스에 참가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TD는 다양한 자질을 갖춰야한다. 대표팀 경력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프로선수로서의 높은 수준의 선수 경험, 높은 수준의 지도자 경험이 있어야한다. 지도자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 자격도 필요하다. 이는 훈련의 질을 보고 팀 수준을 평가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행정 경험도 중요하다. 팀이 나아갈 방향과 거기에 맞는 예산을 짜는 능력은 필수다. 세계의 트렌드를 읽고, 비전을 제시해야하는 게 TD의 역할이다.

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판곤 위원장이 취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판곤 위원장이 취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예를 들어 대한축구협회의 TD라면 대표팀이나 유소년, 여자축구, 풋살 등 다양한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한다. 현 수준을 파악하고, 장단기 목표치를 설정하며, 실행과 모니터링을 통해 수정작업을 해나가는 지휘관이 TD다.

대표팀 감독이 교체됐다고 해서 한국축구의 방향성이 갑자기 바뀌면 곤란하고, 감독과 기술위원장이 한꺼번에 물러났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프로구단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클럽의 철학을 설정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건 기본이다. 구단 철학에 맞는 코칭스태프를 구성해야하는데, 적합한 사람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수 영입과 이적, 유소년 육성 방향에 대한 막중한 권한도 부여된다. 이렇게 해야만 프로팀 감독이 바뀌었다고 해서 클럽의 나아갈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가 없게 된다.

전북 현대가 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을 지낸 조긍연(57) 위원장을 TD로 영입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클럽의 철학을 세우고 팀의 정체성과 방향 설정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프로 구단들이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던 건 감독이 바뀌면 너무 많은 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스부터 주전선수, 그리고 팀의 방향성까지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TD는 한 세대를 준비해야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훌륭한 TD를 길러내는 일이다. 비전과 감각, 추진력, 공정성, 안목 등 넓고 깊은 자질을 갖춘 능력자를 발굴하거나 또는 교육을 통해 육성해야한다.

김 위원장은 “국내에 좋은 후보들이 많지만, 그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 교육을 통해 훌륭한 디렉터를 배출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축구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인재 육성이 중요한 이유다. 정체기의 한국축구에는 더욱 절실하다. TD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도 같은 맥락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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