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스카우트 파동 30년, 드디어 빛 보는 ‘비운의 천재’ 김종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0월 17일 05시 30분


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운영했던 김종부 감독(가운데)은 어엿한 프로축구단의 수장으로 변신해 경남FC를 환골탈태 시켰다. 어려움과 
실망이 가득했던 팀을 맡아 부침도 겪었지만 결국 클래식(1부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며 탁월한 지도력을 
과시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운영했던 김종부 감독(가운데)은 어엿한 프로축구단의 수장으로 변신해 경남FC를 환골탈태 시켰다. 어려움과 실망이 가득했던 팀을 맡아 부침도 겪었지만 결국 클래식(1부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며 탁월한 지도력을 과시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1987년의 한국축구는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탓이다. 프로 원년인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아마추어와 프로팀이 섞여 자웅을 겨뤘던 한국프로축구는 1987년 프로축구위원회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독립되면서 명실상부 프로구단들만의 리그가 됐다. 프로리그 중흥의 기대감이 한껏 높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시즌 말미에 예상치 못한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축구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1983년 멕시코세계청소년선수권 4강 신화의 주역 김종부의 인기는 당시 하늘을 찔렀다. 모든 걸 갖춘 대형 스트라이커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모든 구단이 탐을 낸 건 당연했다. 몸값도 치솟았다. 어느 팀을 택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처음 계약한 구단은 현대였다. 김종부는 고려대 4학년 때인 1986년 3월 파격적인 조건으로 사인했다. 하지만 채 한달도 되지 않아 현대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대우행을 선언했다. 이전투구의 시작이었다.

고려대 축구부에서 제명되는 등 사태는 일파만파였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무대를 앞두고 일시 구제된 그는 불가리아전 동점골을 넣는 등 다시 한번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프로무대에서는 논란거리에 불과했다.

무자격의 김종부가 1987년 9월 18일 부산에서 열린 일본대표팀과의 친선전에 대우유니폼을 입고 교체 투입되면서 자격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대우가 11월에 김종부를 선수등록하자 현대는 팀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프로리그의 존폐까지 걱정해야할 정도로 대 혼란에 빠졌다. 결국 대우가 김종부 포기를 선언하면서 파문은 일단락됐지만, 최순영 대한축구협회장이 물러나는 등 2년에 걸친 스카우트 파동은 한국축구사를 심하게 얼룩지게 했다.

프로 입단 당시 김종부. 사진|MBC 캡쳐
프로 입단 당시 김종부. 사진|MBC 캡쳐

이 사건은 천재 스트라이커의 운명도 바꿔 놓았다. 한창 뛰어야할 나이에 스카우트 싸움에 휘말린 가운데 1988년 포항 입단으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이미 몸 상태는 4강 신화의 주역이 아니었다. 이후 대우~일화 등으로 전전하며 우여곡절을 겪었고, 1995시즌을 끝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무대 8년 동안 81경기에서 단 6골을 기록했다. 골을 기록한 시즌도 2시즌(1989년 1골, 1990년 5골)에 불과했다. ‘비운의 천재’는 그렇게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는 지도자로 재기를 노렸다. 대우 시절 동독 출신 프랑크 엥겔 감독이나 헝가리 출신 베르탈란 비츠케이 감독 등과 생활하며 선진 축구를 경험했던 그는 축구 공부, 특히 지도자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않았다. 거제고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뒤 동의대~중동고를 거치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갔다. 학원축구를 통해 후배들을 가르쳤고, 그 가르침을 통해 후배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자신감이 생기자 성인 무대로 범위를 넓혔다. K3구단 양주시민축구단을 이끌었고, 2013년에는 화성FC의 사령탑을 맡았다.

밑바닥부터 쌓은 내공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2014년 K3 우승을 일궈냈다.

화성FC 감독 시절 김종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화성FC 감독 시절 김종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6년, 드디어 기회가 왔다. K리그 챌린지(2부) 경남FC 감독으로 낙점 받으면서 20여년 만에 다시 프로 무대를 밟은 것이다.

김 감독은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전임 사장의 불미스러운 일로 첫 해 승점 10점 감점을 받고 시작했지만 리그 8위로 시즌을 마쳤다. 프로 감독으로서 감을 잡은 그는 욕심내지 않았다. 특히 선수들을 잘 다독였다. 힘들 때도 쉽게 흔들리지 않은 건 잘 형성된 팀 분위기 덕분이었다. 기본에 충실한 훈련과 선수의 능력에 맞춘 전술을 통해 탄탄한 조직력의 팀으로 가꿔갔다.

그의 리더십은 2시즌 만에 빛을 발했다. 2017시즌 전반기에 18연속 무패 대기록(12승6무)을 세우는 등 승승장구했고, 10월14일 서울 이랜드와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강등 3년 만에 클래식(1부)으로 승격이 확정됐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프로선수들은 기본이 갖춰진 선수들이다. 골격을 갖춘 채 그들을 믿고 기다려준 것이 이렇게 큰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며 기다림의 보람을 강조했다.

경남 김종부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경남 김종부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우승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선수단 헹가래를 고사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경쟁했던 고(故) 조진호 부산 감독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는 “마음으로는 같이 울고 싶다. 나도 똑같이 압박감을 갖고 왔다”며 속내를 전했다. 또 모친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도자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 감독은 심호흡을 하며 또 다른 비상을 꿈꾸고 있다. “아마추어 감독시절에는 프로팀 감독되는 것이 로망이었다. 그런데 이제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올라갔다. 클래식에서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는 게 목표다”고 했다. 대학시절 스카우트 파동으로 2년이나 경기를 못 뛰는 등 아픔을 겪었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나날들조차 지금의 결실을 맺게 해준 자양분이었다는 ‘비운의 천재’ 김종부. 그가 클래식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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