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판/동서남북]산업부 눈치에 섬유개발硏 원장 공모 파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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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참 허탈합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한 직원은 최근 기자에게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비정상적인 체제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올해 야심차게 추진하려던 사업들과 조직 개편, 경영 효율화 작업들이 흔들릴 처지”라고 말했다.

현재 섬유개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임기가 만료된 문혜강 원장이 5개월째 대행을 하고 있다. 신임 원장을 공모했지만 막판에 연이어 파행을 겪은 탓이다.

사정은 이렇다. 당초 지난해 10월 30일 원장 채용 공고를 내고 원장추천위원회가 지원자 가운데 서류 심사 등을 통과한 문 원장 등 3명을 면접 대상으로 결정했다. 한 달이 지난 11월 30일 면접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됐다. 당일 추천위원회 구성원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대구시 관계자 2명이 일방적으로 면접 심사 보류를 통보했다.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또 다른 섬유기관인 다이텍연구원(옛 한국염색기술연구소)과의 통합 추진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역 섬유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당일 원장 면접을 취소한 것은 지역 의견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섬유기업 대표는 “기관 통합 문제도 지역과 충분히 소통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27일 재면접이 이뤄졌고 섬유개발연구원 측은 올해 1월 9일 문 원장 등 2명을 1, 2순위로 산업부에 추천했다.

그런데 조직이 곧 정상화될 것이라는 섬유개발연구원의 기대는 최근 물거품이 됐다. 대구국제섬유박람회(7∼9일)에 참석한 산업부 관계자가 “원장을 다시 공모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1, 2순위 추천자는 자동 탈락했다. 두 달 이상 인사 검증을 이유로 원장 승인을 늦추다가 나온 발언이라 더욱 허탈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연구원 안팎에서 신임(信任)이 두터워 연임을 기대했던 문 원장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섬유개발연구원 내부에서는 “문 원장이 지난해부터 미래 사업으로 개척했던 국방 섬유에 애착이 많았는데…”라며 아쉬워하는 말도 나온다.

섬유개발연구원은 원장 재공모를 논의하고 있지만 침울한 상황이다. 최대 석 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올 상반기 신규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자칫 6월에 원장 임기가 만료되는 다이텍연구원과의 통합 문제까지 맞물리면 원장 재공모가 더 길어질 수 있다.

섬유개발연구원장 공모 파행을 보면서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섬유기관 통합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구성원의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하면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불필요한 인사 개입 의혹을 해소하고 올바른 정책 마련을 위해 산업부와 섬유업계의 소통이 시급해 보인다.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jang@donga.com
#한국섬유개발연구원#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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