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손주돌보미’ 열정은 더 펄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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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지원대상 할아버지까지 확대
이유식 만들기-응급처치 등 전문가에게 25시간 교육받고 한달 40시간 돌보면 24만원 지급

23일 서울 서초구의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손주돌보미’ 교육을 받는 류재홍 씨가 어린이 모형으로 영유아 응급처치 연습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3일 서울 서초구의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손주돌보미’ 교육을 받는 류재홍 씨가 어린이 모형으로 영유아 응급처치 연습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손가락을 이렇게 펴고… 지압이 장기(臟器)까지 가는 3초 동안 살∼짝만 눌러주세요.”

23일 서울 서초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어르신 20여 명이 ‘베이비마사지’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서초구가 지원하는 ‘손주돌보미’가 되기 위해 20일부터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다. 할머니가 대부분인 가운데 할아버지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짝을 지어 베이비오일을 손에 바른 채 강사의 설명대로 서로 마사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서초구는 2011년 손주돌보미 사업을 시행했다. 손주돌보미는 자녀가 서초구에 1년 이상 살고 손자손녀가 2명 이상인 조부모를 대상으로 한다. 조부모가 25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한 달에 40시간씩 손주를 돌보며 최대 24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부모에게는 양질의 육아를 제공하고 조부모에게는 경제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취지는 이렇지만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할머니만 손주돌보미를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도 손주들과 유대감을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우고 싶다” “적게나마 지원금을 받아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주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경험이 풍부한 육아 전문가에게 이론과 실기 교육을 무료로 받고 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하반기 할아버지 8명을 시범적으로 뽑았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날 마사지 연습에 열중하던 류재홍 씨(68)는 아들 부부와 함께 지난달 갓 태어난 막내손자의 출생신고를 하러 동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손주돌보미 사업을 알게 됐다. 류 씨는 보기 드문 ‘육아 베테랑’ 할아버지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부부의 일곱 살배기 첫째 손자와 두 돌을 앞둔 둘째 손자를 거의 5년간 도맡아 키웠다. 하지만 지난해 아내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떴고, 지난달 셋째 손자까지 태어나자 혼자서는 제대로 돌봐줄 자신이 없었다. 남자아이만 셋인 탓에 사설 육아도우미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손주돌보미를 알게 된 류 씨는 며느리가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 짬을 내 교육을 받고 있다.

수업 내용은 이유식 만들기부터 동화 구연, 응급처치 등 다양하다. 막내 손주가 24개월 이하인 할머니, 할아버지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영유아에 관련된 주제이지만 ‘황혼육아 스트레스 관리법’처럼 조부모들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도 있다.

류 씨는 놀이지도법처럼 새로운 육아법을 배우기도 하고, 잊었던 노하우를 새록새록 돌이키기도 한다. 그는 “얼마 전 아들이 막내를 어설프게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교육에서 배운 대로 ‘목이 넘어가지 않게 주의하며 포근하게 안아줘야 한다’고 조언해줬다”며 웃었다. 할아버지들이 영유아 양육법을 배우길 추천하는지 묻자 그는 “나이가 들면 배우자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사별을 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며 “아이를 돌보는 데 익숙지 않은 할아버지들도 교육을 통해 손주를 키우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초구 손주돌보미는 매년 2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 30명 내외를 뽑는다. 지난해까지 총 1466명의 어르신 손주도우미가 2496명의 아이를 돌봤다. 돌보미 자격을 얻으면 일반 가정의 경우 6개월, 세 자녀 이상 가정은 12개월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손주돌보미#서초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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