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침울한 ‘울산 조선해양의 날’ 기념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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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지금부터 꼭 42년 전인 1974년 6월 28일 울산 동구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 전용 부두. 그리스 리바노스사(社)로부터 수주한 26만 t급 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의 명명식이 열렸다. 당시 사진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한국 경제발전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울산시는 이날을 ‘울산 조선해양의 날’로 2006년 제정했다. 1968년 3월 22일 울산석유화학단지 기공식에 맞춘 ‘울산 화학의 날’, 1999년 5월 12일 자동차 수출 1000만 대 달성에 맞춘 ‘울산 자동차의 날’과 함께 울산 3대 주력산업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올해로 10회째인 울산 조선해양의 날 기념식은 28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영빈관에서 열렸다. 김기현 울산시장과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기념식 내내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상황도 예년과 많이 달랐다.

유례 없는 조선업 불황에다 현재 진행형인 구조조정 한파 탓이다. 기념식이 열린 영빈관에서 서쪽으로 1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에는 다음 달 파업 돌입을 앞두고 분주했다. 노조는 쟁의 발생 결의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한 상태다. 또 이달 말까지 현대중공업에서 30년 안팎 근무했던 3000여 명이 구조조정 여파로 회사를 떠난다. 남은 직원들도 주말과 휴일 연장근로수당 등이 없어져 임금이 30% 안팎 줄어든다. 설비지원 업무를 담당 부서는 분사(分社) 대상이다.

오늘의 울산 조선업의 날이 있게 한 리바노스사(현 선엔터프라이즈사)의 사주인 리바노스 명예회장(82)이 최근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그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1년 영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면과 울산 미포만 사진, 그리고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찾아왔을 때 만났던 인물이다. 리바노스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와 만나 “40여 년 전 나를 찾아와 ‘반드시 좋은 배를 만들어내겠다’던 정 명예회장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몇 년 뒤 최고의 선박을 만들어 그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그는 최근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에 대해 “이 고비를 넘기면 반드시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덕담을 했다. 지금 현대중공업에 가장 필요한 자세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라는 것을 정 전무에게 에둘러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울산시민을 비롯한 국민은 현대중공업이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고 재도약할 것으로 믿고 있다. 성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년 제11회 울산 조선해양의 날은 환호와 축복 속에서 기념식이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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