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판단에 모호한 잣대… 배임죄 적용 명확한 기준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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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신동빈 회장 1심선고 촉각

재계 5위 그룹인 롯데 신동빈 회장에 대한 22일 선고를 앞두고 재계에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업 총수의 배임 혐의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시한 대법원 판결이 최근 나오면서 신 회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 계열사 부당 지원에 대한 배임 혐의 및 총수 일가 ‘공짜 급여’와 관련한 횡령 혐의로 5년씩 10년형이 구형된 상태다. 횡령 혐의와 관련해서는 벌금 1000억 원이 추가로 구형됐다.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장도 배임 혐의로 5년형을 구형받았다.

롯데피에스넷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운영사업을 하는 계열사다. 롯데에 따르면 신 회장은 2004년 당시 그룹 정책본부에 인터넷전문은행 사업 준비를 지시했다. 롯데는 점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은 ATM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2008년 피에스넷을 인수했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이 늦어지면서 롯데피에스넷은 자본 잠식에 빠졌다. 2012∼2015년 코리아세븐 롯데닷컴 롯데정보통신 등 롯데의 3개 계열사가 340억 원 상당의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검찰은 신 회장이 사적 이유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를 포함해 499억 원의 불법 지원을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사업 실패를 숨기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주장이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후계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사적 이유로 계열사에 손실을 끼쳤으니 배임이라는 논리다.

롯데의 주장은 다르다. 당시로는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적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롯데는 편의점이나 쇼핑몰에서 ATM보다 가격이 3분의 1 정도인 현금인출기(CD)를 더 선호하면서 롯데피에스넷 실적이 악화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향후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되면 ATM 시장이 다시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롯데 측은 재판에서도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에 지분이 없다. 정식 절차를 거쳐 계열사를 지원한 것을 불법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롯데는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에 참여하려다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포기했다. 롯데피에스넷은 올해 카카오뱅크, KB국민은행 등과 제휴해 세븐일레븐의 ATM 4000여 대를 고객들이 수수료 없이 쓰도록 하고 있다.

형법 355조 2항은 배임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는 최근 대법원의 배임죄 판결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 2부는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일부 무죄 취지로 부산고등법원에 파기 환송했다. 이 전 회장은 자율협약을 맺은 채권단의 승인 없이 계열사끼리 자금을 빌려주게 하고, 모기업인 SPP조선을 통해 원자재를 통합 구매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계열사 지원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면 손해가 났다고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어 계열사 지원 결정이 특정인이나 특정 회사가 아닌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지원이 정상적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는지 등을 고의성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바른의 최문기 변호사는 “그간 배임 행위에 대한 정의가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계열사 간 지원 행위가 어떠한 경우에 배임 행위가 되는지에 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SPP그룹과 사례가 비슷했던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은 이 전 회장과 달리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부실 위장계열사를 지원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배임에 대해 유죄를 받았다. 윤 회장과 김 회장 모두 1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윤 회장은 2심에서, 김 회장은 대법원에서 각각 사적 이익 추구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참작해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2016년 사법연감을 분석해 보면 1심을 기준으로 횡령과 배임의 죄 6320건 중 339건이 무죄로 무죄율은 5.4%였다. 같은 해 일반 형법 무죄율 2.3%보다 높은 수준이다. 사법당국이 배임 기준을 너무 넓게 적용하면서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기업 중에서는 합리적인 경영 판단조차도 배임죄에 걸릴까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상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배임죄는 구성 요건이 불분명하고 포괄적이어서 경영자가 미리 파악하기 어렵다. 무죄를 받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기업은 큰 타격을 받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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