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잃어버린 세대’가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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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선배들이 당연한 듯 올라탔던 버스의 문이 눈앞에서 닫혔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버블 경기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취업난에 몰린 세대가 있었다. 1970∼1982년생,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 취직빙하기(1993∼2005년)를 겪은 소위 ‘로스트 제너레이션’(이하 로스제네)이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채용을 줄여 1991년 90%에 육박하던 대졸 취업률은 3, 4년 만에 50%대로 내려앉았다. 수십 군데 원서를 넣고도 고배를 마신 청년들의 사연이 넘쳐났다.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상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는 점도 재미있다.

결국 이 세대 상당수가 프리터나 파견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취업도 공부도 하지 않는 젊은이를 뜻하는 니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프리터,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 등이 시대를 반영하는 용어로 태어났다.

2000년대 중반, 취업시장은 서서히 회복됐지만 ‘로스제네’들의 절망은 오히려 굳어져 갔다. 새로 온 버스는 다음 세대를 태웠지 별다른 경력을 쌓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은 이들 앞에 서주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격차(양극화) 사회’가 유행어가 됐고 ‘워킹푸어’라는 NHK 스페셜리포트가 반향을 불렀다.

지금 30대 중반∼40대 후반이 돼서도 프리터를 전전하는 로스제네의 표준형은 이렇다. 수입은 최대 월 30만 엔(약 300만 원) 수준, 대부분 독신. 의식주에 쓰고 남은 몇만 엔 정도의 여윳돈으로 플라모델을 사거나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등의 ‘작은 사치’를 누린다. 소속도 수입도 불안정하니 연금, 세금은 가급적 납부하지 않는다. 연애, 결혼, 출산은 사치일 뿐이다.

불행은 그 세대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의 5년 단위 인구 피라미드를 살펴보면 35∼44세 인구는 1696만 명이지만 이들의 자녀 세대인 5∼15세 인구는 1061만 명에 불과하다. 로스제네의 부모 세대인 65∼74세 인구는 1764만 명. 부모 세대와 비슷한 궤적을 보이던 인구 피라미드는 로스제네 세대에 와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과거 눈앞의 효율만을 위해 취업문을 좁혔던 기업들은 경기가 호전되자 허리급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는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가 2012∼2015년에 걸쳐 대량 은퇴한 탓도 있다. 일본 정부도 ‘생활보호 예방’ 차원에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흡수할 것을 권한다. 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정규직화를 위한 직업교육’이 생기고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뒤늦게 정규직이 된 로스제네들의 성공담은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한창 일을 배우고 커리어를 쌓을 시기를 놓친 이들이 10여 년 후배들과 조화롭게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여 년 뒤 이들이 고령자가 됐을 때 사회의 짐이 될 것을 우려한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한국은 청년 취업난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공무원 시험에 쏠리는 현상, 필요 이상의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고 미래가 불안한 현실, 1.0대를 찍은 출산율을 떠올려보면 일본의 로스제네와 겹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부글부글 끓는 분노가 젊은 시절 로스제네들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2000년까지 60만 명대를 유지하던 한국의 출생아 수는 2002년 돌연 40만 명대로, 지난해 3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2020년대 중반이면 취업 연령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때가 되면 지금 일본처럼 구인난 시대를 맞게 될까.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한국이 가진 사회적 자본은 취약하기만 한 가운데, 한국의 청년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까 두렵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버블 경기#로스트 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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