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한파 감안했다면서… ‘노동계 협상참여 배려분’까지 챙겨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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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0.9% 인상 후폭풍]‘시간당 8350원’ 어떻게 나왔나

예상대로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시간당 8350원)대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려면 내년과 후년 15% 이상씩 올려야 했다. 하지만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에 그쳤다. 공익위원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는 ‘고용 쇼크’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14일 최저임금 결정 직후 “고용 사정이 좋지 않은 걸 반영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경영계의 주장대로 동결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두 자릿수 인상률을 고집했다. 결국 노동계의 압박과 고용 악화 사이에서 10%대 초반 인상이란 ‘정치적 타협’을 택한 셈이다.

○ 공익위원 ‘정치적 선택’ 한 듯

14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체회의는 사용자위원 9명 전원과 근로자위원 9명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위원 4명이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결국 공익위원 9명의 손에 내년도 최저임금액이 달려 있었다.

공익위원들은 근로자위원들이 제시한 8680원보다 330원 낮은 8350원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올해 7530원과 비교하면 820원 올리는 안이었다. 공익위원들은 820원 인상의 근거로 △소득 분배를 위한 상승분(369원) △유사 근로자의 임금 인상 전망치(286원) △최저임금에 정기 상여금과 일부 복리후생비가 포함되는 데 따른 보전(75원) 등을 들었다. 또 마지막까지 표결에 참여한 노동계에 대한 협상 배려분이라며 90원을 추가했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은 당초 8300원을 제안했다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의 요구로 50원을 추가로 올렸다. 결국 뚜렷한 인상 근거가 있었다기보다 10%대 초반 인상률을 정해놓은 채 노동계와 타협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익위원인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익위원 중 한 자릿수 인상률을 제시한 위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 수가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일자리 쇼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의 부담이 컸다는 의미다.

○ 실질 최저임금은 1만 원 돌파


인상액으로는 지난해(1060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지만 노동계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사실상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민노총은 “박근혜 정부 4년간 평균 인상률이 7.4%였다”며 “(문 대통령의) 공약 폐기 선언에 조의(弔意)를 보낸다”는 성명을 냈다.

반면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사실상 1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 최저임금 8350원에 의무적으로 줘야 하는 주휴수당(근로자가 일주일 개근할 때마다 지급해야 하는 유급휴일수당) 1680원을 포함하면 실질 최저임금은 1만30원이 된다. 월급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사업주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실질적 최저임금이 1만1825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4대 보험료 사업주 부담분과 퇴직급여 적립액을 포함한 금액이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 29.1%는 이명박 정부 5년 인상률(28.9%)보다 높은 수치다.

○ 급격한 인상으로 ‘범법 사업주’ 속출할 수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최대 501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 근로자(약 2000만 명) 4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대상이라는 얘기다. 숙박·음식업은 내년에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62.1%의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편의점 등 도·소매업도 근로자의 37.3%가 임금이 오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범법 사업주’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림으로써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사업주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1∼4인인 사업장에서는 절반 이상(51.8%)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비율이 4.2%에 불과하다.

한계 상황에 다다른 영세업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거나 근로자를 해고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문을 닫아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시장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대로라면 자영업자가 줄도산해 최저임금 근로자의 일터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유성열 기자
#고용한파 감안#노동계 협상참여 배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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