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당근 없는 소득주도성장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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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최근 SNS에 돌아다니는 유머 중에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가수 김건모는 ‘핑계’라는 노래가 히트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세상만사 어느 경우에도 핑계를 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실패를 두 번 세 번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자리 창출 부진이나 소득분배구조 악화의 원인을 인구구조의 탓으로 돌리려는 최근 경제 관료들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이달 20일에는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된 원인을 인구 감소세가 빠르게 진행된 탓으로 돌렸고, 24일에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올해 1분기(1∼3월)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8% 줄어든 이유가 인구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인구구조에 지각변동이 온 것도 아닌데 실적이 부진한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것은 핑계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고용과 분배 사정이 악화된 것은 산업구조나 체력에 맞지 않게 최저임금을 너무 가파르게 올린 것이 원인이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치킨집 사장과 편의점 점주 등 영세 자영업자의 비율이 유독 높은 나라다. 가파르게 오르는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종업원을 해고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것이 요즘 숫자로 나타나고 있는 경제현상이다.

자명한 이유를 제쳐두고 인구구조를 들먹이는 경제 관료들의 행동에는 문재인노믹스의 간판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는 동기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의 유사한 정책과 비교할 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임금인상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소득주도성장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성과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노사는 매년 봄 교섭을 통해 한 해의 임금인상률을 정하는 춘투(춘계생활투쟁) 전통이 있는데, 2014년부터 노조들은 굳이 힘들게 투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노조를 대신해서 기업들에 임금을 올리도록 압박하는 이른바 ‘관제(官製) 춘투’를 해왔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은 2012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역사상 두 번째로 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최장(最長) 경기상승 기록까지 갈아 치울 기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한국 대학생들과 달리 일본 대학생들은 사실상 ‘전원(全員) 취업시대’에 살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비해 문재인노믹스가 성과가 미흡한 원인은 무엇일까. 두 노믹스의 성패를 가른 근본적인 차이는 정책 믹스(mix)에 있다. 아베 총리는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채찍전략’과 함께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과감하게 줄여주는 ‘당근전략’을 함께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노믹스는 기업에 대해 당근 없는 채찍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고 기업의 연구개발에 주는 세제 혜택까지도 줄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인지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들이 총동원돼서 기업들의 사소한 흠집까지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문재인노믹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2차 충격을 주지 않도록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동시에 채찍 일변도의 기업 정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물인 나귀조차도 채찍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인구구조#문재인노믹스#소득주도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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