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비리유치원 “문 닫겠다”… 학부모 “애들 볼모 갑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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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신입 안받아” 문자 통보, 학부모 “반성은 안하고…” 분통
정부 감사 등 비리대책 강화에 ‘일방적 폐원’ 늘어날 가능성

최근 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 파문 뒤 비리 사실이 알려진 일부 사립유치원이 일방적으로 문을 닫겠다고 나선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해당 유치원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데 답답한 심경이다”라고 토로했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본격적으로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일방적으로 문을 닫는 유치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내의 A유치원 대표원장은 15일 열린 학부모 간담회에서 “문을 닫겠다”고 알렸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학부모는 “반성하겠다고 하면 될 일을 애들을 볼모로 갑질한다”며 “수백 명의 어린이와 학부모를 기만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다른 한 학부모는 “잘못을 시인하고 잘하겠다는 다짐을 들으러 간 부모 앞에서 원장은 국가 탓을 하며 (유치원 운영) 안 하겠다 했다”며 “아이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다른 곳에 자녀를 보내 적응시키는 게 큰 부담이기 때문에 폐원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해당 유치원은 설립자의 부친을 채용하고 급여는 원장 여동생에게 입금 처리했으며, 교구교재비 허위·부당 지급, 설립자의 개인 아파트 관리비와 차량 수리비 집행 등 비리가 적발돼 정직 3개월과 약 4000만 원의 보전 처분을 받았다. 이 유치원 관계자는 1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다니는 원아들이 졸업할 2년 후에 폐원을 할 지 아니면 운영을 계속 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경기 지역의 B유치원도 학부모에게 “내년부터 신입 원아를 받지 않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문을 닫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 학부모는 “원아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유치원을 믿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비리 유치원이 폐원 의사를 밝히더라도 당장 문을 닫을 수는 없다. 유치원 폐원은 관할 교육지원청에 신청하는데, 재학 중인 원아를 조치할 방법을 담은 ‘원아 및 교원조치 방법’이 실현 가능해야 인가를 받을 수 있다. 폐원 시기 또한 학기말이나 학년말 등 학습에 피해가 없도록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비리 사실이 알려진 사립유치원들이 잇달아 문을 닫게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치열한 유치원 추첨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에 자녀를 유치원에 보낼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파문이 커지면서 사립유치원과 교육부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사립유치원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유를 막론하고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최근 공개된 각종 사립유치원 비리는 “(현재) 회계·감사기준이 사립유치원에 맞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이번 사태는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유아교육을 만드는 논의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최정혜 한유총 이사장은 사임했다.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박춘란 차관 주재로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 및 유아교육담당자 긴급회의를 열고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감사를 두고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처음이다. 교육부는 “18일 실명 공개 등을 확정한 뒤 당정 협의 등을 거쳐 이달 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일부 비리유치원#애들 볼모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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