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폭행’ 불법시위에 면죄부 주라는 경찰 조사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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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민중총궐기’ 주최측 상대 손배소 취하 권고 논란

2015년 열린 민중총궐기투쟁대회의 주최 측에 대해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라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은 ‘이 권고가 현실화된다면 경찰 버스를 파손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불법 폭력시위에 면죄부를 주는 첫 선례를 남기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불법 폭력시위로 3억8620만 원의 피해를 봤다며 경찰이 국가 명의로 시위 주최 측에 낸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라고 21일 권고했다. 진상조사위는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위촉한 민간위원 7명, 경찰 추천위원 3명(2명은 경찰 간부) 등 총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경찰은 당시 경찰 버스와 무전기 등 장비 파손으로 3억2770만 원, 부상을 당한 경찰관 치료비로 5850만 원 등의 손해를 봤다며 2016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피고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한상균 당시 민노총 위원장 등이다. 이 소송은 4차례의 변론기일을 거쳐 다음 달 11일 법원이 경찰과 시위 주최 측을 중재하는 조정기일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의 광화문 일대 진입을 금지하고 차벽으로 막아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결론지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당시 경찰이 금지하지 말았어야 할 시위를 금지하면서 피해가 생긴 만큼 시위대에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게 소송 취하 권고의 이유”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의 권고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진상조사위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 개혁’을 표방하며 들어선 조직인 만큼 권고를 사실상 거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 소송 취하 권고를 두고 진상조사위 내부에서도 ‘법원의 판단을 받지도 못하게 소송을 포기하라고 권고할 권한이 있느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경찰 추천위원뿐 아니라 일부 민간위원도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 출신인 유남영 위원장과 시민단체 출신 위원들이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경찰의 손해배상 청구를 묵인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는 뒷얘기가 나온다.

경찰은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숨진 사건에 대한 책임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인 폭력시위에 대해서까지 민사상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시위를 주도한 한상균 당시 위원장은 징역 3년이 확정돼 형사 책임이 인정됐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때려도 손해배상은 안 해도 된다’는 선례를 남긴다면 향후 비슷한 폭력시위에서 공권력의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명백한 위법인 도심 내 폭력시위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사안에 따라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당시 폭력시위를 했던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등 단체는 경찰이 제기한 1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피해액을 배상했다. 경비업무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위법행위에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스스로 정치경찰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경관 폭행#불법시위#면죄부#경찰 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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