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사회탐구]대면보고 꺼린 대통령의 원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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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작전의 지휘봉을 잡았다고 해서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구조 성패는 현장에 출두한 해경 지휘관의 판단과 능력에 달렸다. 그러나 국가 최고지도자가 재난과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관한 상징성은 중요하다.

관저에서 보고서 읽은 대통령

 2001년 9·11테러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41차례나 현장을 찾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를 독려하고 소방관을 격려하는 모습은 충격과 슬픔에 빠진 미국인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반면 어린이에게 책 읽어주기 행사를 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7분간 멍 때리다가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일 본관 집무실에 ‘정위치’해서 TV를 지켜보며 선제적 지시만 했어도 오늘날 미용시술을 했네, 안 했네 하는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밝혀진 유일한 사실은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가 “당일 박 대통령과 6, 7회 전화 통화를 했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걸 보면 대통령은 그날 상황을 챙기고 있었다. 그러면 왜 본관으로 출근하지 않았을까.

 김 대사는 왜 첫 보고를 서면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청와대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 질문에는 내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여간해서 받지 않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서면보고를 한 것이다. 핵심은 세월호 7시간에 대통령이 무얼 했느냐가 아니라 평소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다. 서면보고를 선호하다 보니 본관에 출근할 필요가 없었든가, 아니면 관저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면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집권 초부터 조찬 만찬행사가 사라졌다, 대통령이 밤새 보고서를 읽는다, 대통령이 본관으로 출근할 때 하던 등청·퇴청 행사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한 번도 독대를 못 했다”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급기야 대면접촉 부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대통령은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서관들을 향해 말했다. “그게(대면보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시인도 부인도 할 수 없었던 비서관들의 썩은 미소를 기억한다. 그때라도 언론의 지적에 귀 기울였더라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세라 해도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면대면 접촉이다. ‘노’라고 말해도 제스처는 ‘예스’일 때도 있다. 말로 하는 소통은 커뮤니케이션의 7%밖에 안 되며 목소리, 얼굴 표정, 제스처 등 비언어적 소통이 93%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통령이 뚱딴지같은 현실 진단과 정책 성과를 내놓아 의아한 적이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미사여구로 치장된 보고서만 읽었던 탓이다.

폐쇄성이 ‘세월호 7시간’ 논란 불러

 사람 좋아하는 외향성은 지도자의 좋은 자질이지만 혼자 있을 때 배터리가 충전되는 내향적 지도자도 얼마든지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이다. 어차피 대통령이란 외로운 자리다. 내향적 대통령은 소신과 통찰력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그런데 폐쇄성만 발현돼 탄핵안에다 세월호 7시간이 포함되는 사태를 불렀으니 안타깝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대통령#세월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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