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질 부장검사, 우리 회사에도…” 상명하복에 속으로 우는 직장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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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에게 고 김홍영 서울남부지검 검사(33)가 김대현 부장검사로부터 당한 일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직장인들은 “김 부장검사가 우리 회사 김 부장인 줄 알았다”며 김 검사의 비극적 일상에 동질감을 표시했다. 4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865명을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52.4%가 직속 상사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했다.

일부 대기업이 하향식 평가를 개선하고자 나섰지만 경직된 조직 문화는 여전하다. 직장인들은 “아직도 직장 내에 전통적인 상명하복식, 권위적 조직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상사는 갑, 부하는 을

꿈의 직장인 금융 공기업에 다녔던 배모 씨(30·여)는 직속 상사의 인격적 학대 때문에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2년 만에 그만뒀다. 그는 하향식 평가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배 씨는 “인사권을 쥔 상사에게 후배는 그저 약자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평검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피라미드 지휘 구조에서 김 검사는 직속 상사에게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배 씨도 마찬가지였다. ‘임원-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의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상사의 말은 곧 법이었다. 평가 및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 후배는 철저한 ‘을’이었다.

대기업 하청업체에 다녔던 이모 씨(33)는 상사의 가족행사에 불려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가 김치 등 음식까지 해다 바쳤다. 보이지 않은 ‘강압’에 의한 호의였지만 고마워하기는커녕 “맛이 없다”고 핀잔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그 상사를 피해 다른 회사로 옮겼다.

대기업에 근무했던 김모 씨(32·여)는 커피나 담배 등 부장의 요구사항이 있으면 일을 하다가도 나가서 사와야 했다. 밤늦게 카카오톡으로 다음 날 회사 출근할 때 생필품을 챙겨 오라고 하기도 했다. 기껏 사 갔는데 자기가 원하는 생필품 브랜드가 아닐 경우 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 효율성만이 최고 가치?

몇 년 전 A사는 혁신적인 평가 제도를 갖춘 곳으로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대표까지도 직원 투표로 결정되는 민주적인 방식 덕분에 이 회사는 매년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인원도 300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이 회사는 돌연 평가 시스템을 바꿨다. 다면 평가 비중을 축소하고 하향식 평가 구조로 간 것이다. 회사 측은 “조직이 커지면서 효율적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모두가 혁신적이라며 성공의 비결로 꼽았던 방식이 ‘효율성’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최근 대기업 중심으로 상향식 평가와 다면 평가를 하고 있지만 실제 인사고과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에서는 기업이 대부분 오너 경영체제로 운영되거나 전문경영인이라도 오너의 눈치를 보면서 단기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업 구조가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요즘 스포츠 팀에서도 주장이나 감독이 자기의 직무 범위를 넘어서 힘을 발휘하면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직무 범위를 넘어 부당한 권력을 사용하는 상급자는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사의 ‘파워’가 건강한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영 jjy2011@donga.com·김동혁 기자
#상명하복#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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