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 한달전 붕괴위험 알렸는데 조치 없어”… 대형참사 날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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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4층짜리 상가 완전히 무너져

한달전에 튀어나오고 금 간 건물 벽… 순식간에 와르르 3일 낮 12시 반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4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콘크리트 잔해와 구겨진 철근만 가득 쌓여 건물 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수색 및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오른쪽 사진). 건물 입주 상인이 지난달 9일 용산구에 건물 붕괴 위험을 경고하며 보낸 사진에 
건물 벽이 튀어나오고 여러 군데 굵은 금이 간 모습이 선명하다(왼쪽 사진 실선 안).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달전에 튀어나오고 금 간 건물 벽… 순식간에 와르르 3일 낮 12시 반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4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콘크리트 잔해와 구겨진 철근만 가득 쌓여 건물 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수색 및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오른쪽 사진). 건물 입주 상인이 지난달 9일 용산구에 건물 붕괴 위험을 경고하며 보낸 사진에 건물 벽이 튀어나오고 여러 군데 굵은 금이 간 모습이 선명하다(왼쪽 사진 실선 안).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일 낮 12시 반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4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흔들거렸다. 4층에 사는 세입자 이모 씨(68·여)는 방 벽과 바닥이 심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둔탁한 물건이 긁히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렸다. 최근 건물이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진동이 격심했다. 이 씨는 다급히 집을 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1층 출구에 다다르기 직전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건물은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주저앉았다.

사고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은 이 씨가 유일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발견된 이 씨는 팔다리에 부상을 입어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당국은 “현장 수색 결과 이 씨 외에 다른 피해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다. 건물 1, 2층에는 각각 고깃집과 칼국숫집이 입주해 있었다. 3층과 4층에는 가정집 두 가구가 있었다. 일요일이라 두 식당은 모두 쉬었던 데다 3층에 사는 주민 2명 모두 외출한 상태여서 대규모 인명 피해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4층 거주자 2명 가운데 다른 한 명은 밖에 나가고 없었다. 인근 주민은 “건물 1, 2층 식당이 ‘맛집’으로 소문나서 장사가 잘됐다. 식사때면 손님 50∼60명이 오가던 건물이다. 하마터면 수십 명이 초상을 치를 뻔했다”고 말했다.

사고 건물 입주자가 한 달쯤 전 건물 붕괴 징후를 감지하고 관할 용산구에 알렸으나 구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층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모 씨(31)는 지난달 9일 용산구 관계자에게 건물 벽이 뒤틀리고 균열이 간 사진 등을 첨부해 e메일을 보냈다. 정 씨는 3일 “5월 초부터 건물 벽이 눈에 띄게 부풀고 금이 가 불안해서 구에 도움을 요청했다”며 “e메일을 보낸 다음 날 용산구 관계자가 현장 주변에 왔다고 연락해 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건물은 1966년에 지어져 올해 52년 된 건물이다. 건물 준공 이후 증·개축한 적은 없다. 연면적 301.49m² 규모로 용산재개발 5구역에 속해 있다. 5구역은 2006년 4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개발 사업이 12년 넘게 지연되면서 시공사 선정 등 관련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조합 측은 올 3월에도 시공사 선정 공고를 냈다. 하지만 단 한 업체도 참여하지 않아 5월 말 입찰은 연기됐다.

재개발 사업 지연으로 건물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다. 용산구 다른 관계자는 “위험시설물은 사전 순찰을 통해 인지하거나 민원이 접수되면 전문가 안전진단을 받아 지정한다. 사고가 난 건물은 위험시설물로 인지한 사실이 없고,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구는 건물 붕괴 우려가 있다는 입주자 정 씨의 민원 접수와 관련해서는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사고 건물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일부 상인은 “우리 가게도 주방과 지붕에 금이 가 있다”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주민들은 2016년부터 인근에서 하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를 건물 붕괴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해당 아파트 공사를 위해 H건설이 발파 작업을 한 뒤로 인근 건물들에 균열이 생기는 등 이상이 나타났지만 구가 안전 관련 조사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방당국은 사고 건물 주변의 노후 건물 6개동 거주자들에게 이날 긴급 피난명령을 내렸다. 경찰은 건물 재개발 조합장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용산 4층짜리 상가#대형참사#붕괴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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