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지구의 몸부림… 극빈국 몸서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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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엔 비, 이탈리아 남부엔 눈… 온난화 역습에 글로벌 몸살

12일 미국 보스턴시에 폭풍과 폭설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미 국립기상청은 동부 대서양 연안 지역에 눈폭풍 경보를 발령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 지역의 차가운 공기를 가둬두던 제트기류가 약해진 까닭에 이상저온 현상과 눈보라 폭풍이 북반구 곳곳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역사상 유례없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지구 전체의 공기 흐름에 변화가 생겨 유럽과 북아메리카 등의 지역에 거센 눈폭풍이 빈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2, 3년 전부터 발생한 상황이지만 그 형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지적이다. 찬 공기가 빠져나간 북극 중심부 쪽으로 그린란드 등 주변부의 따뜻한 공기가 전방위로 밀려들어 얼음을 빠르게 녹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를 떠난 액화천연가스 수송선 ‘예두아르트 톨’호가 사상 최초로 유빙(流氷) 분쇄 작업 없이 겨울철에 북극점 인접 지역을 통과해 프랑스에 입항했다. 운송업체들은 “효율적인 항로가 새로 생겼다”며 환영했지만 국제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는 “북극 항로를 통해 화석연료 운송이 한결 수월해짐으로써 앞으로 북극의 얼음이 더 빠르게 녹게 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북극점 인근 지역의 기온은 1958년 관측 개시 이후 최고인 영상 2도를 기록했다. 이는 화석연료 사용을 조절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고 세계 195개 나라가 결의한 2016년 11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목표 상한선’으로 정했던 북극 기온이다. 스웨덴 지질연구소는 “2월 북극 최고기온은 예년의 5월 평균기온 수준이었다”며 “북극 지역 유빙의 지난달 면적은 약 1399만 km²로 지난해 면적 최저 기록보다도 16만 km²가량이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과거 30년간 평균 면적보다는 135만 km² 줄어든 수치다.

시베리아의 지난달 평균기온도 관측 이후 평균치보다 35도나 높았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로 지난 40년 사이 지구상의 동물 개체 수가 60%나 감소했으며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조류는 10억 마리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인류는 지구에서 오랜 시간 함께했던 모든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9일 “북극에서 비가 내리고 이탈리아 남부에서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 현상이 이어지면서 ‘지구 최후의 날’에 대비하기 위해 2008년 만들어진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최후의 날 저장고)에도 경고 신호가 나왔다”고 전했다. 기후변화가 이 저장고를 만든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북극 지역의 영구동토층(연중 온도가 0도 이하인 지층)이 녹아내려 창고 일부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극점 지역 해빙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선진국이 아닌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2일 “지구온난화가 극빈국가를 고문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거주민 수백만 명이 가뭄과 물 부족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상황을 조명했다.

NYT에 따르면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에서 2011년부터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기르던 양떼가 떼죽음을 당해 당장 끼니로 먹을 양젖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케냐 국토의 75% 이상이 물 부족 지역이다.

인디펜던트는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밀려올라와 거주지와 학교를 잃은 인도네시아 연안 지역 상황을 10일 보도했다. 외출할 때 언제나 발목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자바섬 북단 판타이 바하지아 마을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지구온난화가 만들어낸 변화를 뚜렷이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해변마을 데막 주민들은 파도가 칠 때마다 집 안으로 밀려드는 바닷물 때문에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 그 위에 TV와 냉장고 등 가전기기를 올려놓고 생활한다. 국제습지연합에 따르면 파도를 막아주던 인도네시아의 아열대 수림 면적은 30년 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며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나라 미국도 이런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9일 “기후변화로 캘리포니아 농업 생산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LAT는 최근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의 보고서를 인용해 “가뭄과 홍수, 태풍이 빈발하고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이 지역에서 포도, 딸기, 호두, 키위, 사과, 살구, 배 등의 작물을 기르기가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까지 캘리포니아의 호두, 배, 복숭아, 살구 수확량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2위 탄소배출국이면서 자국의 굴뚝산업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파리협약을 내팽개친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기후변화 위기를 외면한 채 제조업과 금융업만 돌보며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기상기구(WMO)는 미국의 협약 탈퇴로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기온이 0.3도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의 파리협약 탈퇴 결정에 대해 “과학적 사실을 거스르는 미친 결정”이라며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갈수록 더 많은 죽음, 더 높은 해수면, 더 좁아진 땅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니브스 덜사크 워싱턴대 해양환경연구소 연구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농업 생산이 줄어들어 당장 피해를 입고 있는 주 정부들이 연방정부의 기후 관련 정책 수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변화의 동력을 찾기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위성 관측 결과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항구 뒤쪽 연안 지형이 해수면 상승으로 급격히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샌프란시스코공항, 포스터시, 트레저아일랜드 지역은 해마다 10mm씩 가라앉고 있다”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에도 전쟁의 위험을 알려주는 분명한 징후가 있었음에도 눈앞의 이익에 매달린 사람들이 그것을 외면했던 경험을 돌이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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