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에너지 전환]“파란 하늘에 속으면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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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민수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공동대표

김민수 대표. (박해윤 기자)
김민수 대표. (박해윤 기자)

인사를 나눈 뒤 대뜸 물어봤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어떤가요? 하늘이 파란데”

“오늘은 괜찮은 날이에요. 하지만 하늘이 파랗다고 늘 좋은 건 아니에요.”

김민수(50)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공동대표는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어플)에서 농도 수치를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세먼지 불감증’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미세먼지는 석면처럼 1군 발암물질이다. 석면의 위험성은 많이 알려졌기에 사람들이 노출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서서히 사람 몸을 잠식하고 피해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니 잘 느끼지 못한다. 또 석면과 달리 1년 내내 마주친다. 사람은 공기와 분리돼 살 수 없다. 너무 막막하니 외려 경각심도 덜하고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파란 하늘에 속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 같은 경우 맑은 날씨에도 숨 쉬기가 불편해 어플을 확인해보면 어김없이 수치가 안 좋다. 우리 아이는 아토피가 있는데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날엔 피부가 발갛게 된다.”

미세먼지 공포증이 번지면서 판매량이 증가한 대표적 상품이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다. 그런데 이들 제품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김 대표는 마스크에 대해 “기능성만 인증된 상태이고 인체 안전성은 검증되지 않았다”라고 우려했다.

“일반 마스크는 50% 걸러준다. KF80과 같은 황사용 마스크를 꽉 밀착해 착용해야 80%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공기가 잘 안 들어오니 호흡이 곤란해지는 게 문제다. 또한 인체 유해성도 검증되지 않았다. 정부에 그런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는데 개선되지 않는다.”

공기청정기도 마찬가지다. 효과는 있으나 인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겨울엔 가습기 사용량이 증가한다. 그런데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는 상극이다.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리면 곰팡이나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 또 밀폐된 공간에서 다기능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면 오존이 발생한다. 기능보다 인체 안전성을 중시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과장광고에 제동을 걸고 사용 환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시내. (shutterstock)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시내. (shutterstock)

그는 학교 교실에서 공기청정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사실 공기청정기보다 더 좋은 게 환기다.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더라도 환기가 안 된다면 각종 유해물질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밀집한 좁은 공간에서 창문을 닫은 채 공기청정기를 틀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졸음이 오고 소음에 노출된다. 일정 농도에 달하면 작동을 멈추게 해 전력 낭비를 막아야 한다. 여름에 공기청정기를 틀면 실내가 더 더워지기 때문에 에어컨 사용량이 늘고 이는 전력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한 제품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공기청정기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제품일수록 부작용도 커질 우려가 있다. 오로지 미세먼지 제거 기능만 있는 제품이 좋다. 정부에서 적정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을 충족한 제품만 구매하도록 하면 예산 낭비도 막을 수 있다.”

평범한 주부인 그가 미세먼지 전선(戰線)에 앞장서게 된 계기는 아이와 관련된 작은 사건이었다. 지난해 9월 미세먼지 농도가 짙었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등산을 한다기에 전화를 걸어 보류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국제 표준인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국내 미세먼지 측정 기준을 내세워 행사를 강행했다.

“그날 학교 측 설명을 듣는 순간 화가 났다. 내 아이를 지키려면 내가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운영하는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인터넷 카페는 1년 만에 56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회원들은 지역별 미세먼지 수치 등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전파한다. 그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적극 참여해 11회 발표하고, 두 차례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국회, 환경부, 교육청 관계자들과 40여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김 대표는 환경부 미세먼지대책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8월 초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만3000명이 서명한 정책 제안서를 접수시켰다. 대통령 공약인 청와대 직속 미세먼지 특별위원회 설치와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한편 국제 기준에 의한 현지 생산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특별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는 환경부 단독으로는 미세먼지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이나 세제 개편, 중국발 미세먼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외교부가 다 같이 나서야 한다. 각 부처 이견을 조율하고 통합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게 해서 국가 전체적으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내 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경우 미세먼지 측정 기준을 통과한 시설에서 만든 제품만 국내에 들여오게 하자는 제안이다.

“중국에 전 세계 공장이 몰리는 건 인건비가 싸고 환경규제가 약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규제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설정해 이를 충족해 만든 제품만 반입을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에 대해선 환경세를 부과하자는 게 우리 주장이다. 중국뿐 아니라 인도, 베트남 등지로 확대하면 더 좋을 것이다. ‘착한 소비’ 혹은 ‘에코 비즈니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청와대는 이 제안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시민단체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그것을 꽃피워주는 게 정부 역할”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미세먼지#에너지 전환#공기청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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