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원의 봉주르 에콜]〈15〉교문 앞에서 사제지간 ‘맞담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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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파리 중심부에 있는 빅토르 위고 고등학교에서 가르칠 때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몇몇 학생이 정문 바로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평범해 보이는 학생들이었는데 어찌나 자연스럽고 당당하던지. 그 모습에 놀란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프랑스에서는 길거리 흡연이 가능하고 흡연에 대해 꽤 너그럽지만 그래도 18세 이하는 법적으로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학교에 교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됐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아니어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선생님이란 걸 알까? 그래도 한마디 해야겠지? 아니, 우선 학교에 들어가서 보고해야 하나?’ 마침 나이 지긋한 교사가 학교에서 나왔다. 그러자 그 학생들 중 몇이 “Au revoir, Monsieur!(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 선생님은 미소 띤 얼굴로 인사하며 지나갔다. 나는 더 당황스러워 입을 다물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이 충격적인 장면에 대해 당시 고2였던 아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하교시간이면 늘 정문 앞에서 담배 피우는 애들이 꽤 있어요.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며 맞담배를 피우는 애들도 가끔 봤고요.”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담배 피우는 학생을 본 적도 없고 몰래 피우다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고 아이는 덧붙였다.

프랑스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철저하게 책임지며, 교사와 감독관이 감독하고 규칙을 위반하는 학생은 교사가 학생지도실에 보고해 엄중히 처벌한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는 정문만 벗어나도 관여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다.

그날 이후 다른 고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종종 봤다. 동료 교사들과도 이야기해 보았는데 학생들의 흡연 자체를 걱정하거나 비난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학교 밖에서 하는 흡연에 대해서는 교사 차원에서 공론화하거나 관여하려는 경우는 없었다. 이 문제를 교육 문제로 연결하지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나 학생들의 불손한 태도 문제로 보지도 않았다.

이런 태도는 흡연에 대한 인식 때문만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학교 안에서는 교사로서 교과목에 충실한 ‘선생’이어야 하지만 학교 밖에서까지 ‘언제나 선생질’을 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사 자신은 물론이고 학생, 학부모들 그리고 다른 사회구성원들도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과 의무, 권리 범위도 명확한 것 같다. 교사란 학교 ‘안’에서는 직업인으로서의 ‘선생’이지만 학교 ‘밖’에서는 다른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시민으로서 ‘개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 비해 프랑스 교사들은 밖에서 ‘선생질’을 하지 않고(또는 못 하고), 또 선생이라고 해서 개인생활이 불편해지거나 간섭받는 경우도 덜한 것 같다.

교사와 학생의 맞담배 이야기는 사제지간에 대한 내 생각에 충격을 주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다음에는 프랑스 교실 풍경을 통해 그 관계가 학교 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고등학교#담배#고등학생 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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