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83〉돌아서 가면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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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한글파일 문서에서 ‘돌아 가다’를 컴퓨터 자판에 쳐 보자. 글자 아래 빨간 줄이 그어진다. 잘못 적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돌아가다’로 띄어쓰기를 조정하면 빨간 줄이 없어진다. ‘돌아가다’가 맞고 ‘돌아 가다’는 틀린 표기라 생각하게 된다. 정말 그럴까? 컴퓨터의 맞춤법 수정 기능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우리가 어떤 의도로 그 말을 입력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문장에서 그 단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모른다는 의미다.

우리 머릿속에는 단어들이 들어 있는 사전이 있다. 문장을 만들 때 우리는 그 머릿속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서 쓴다. ‘돌아가다’로 붙여 적는 것은 머릿속 사전에 하나의 단어로 기록된 단어들이다. 하나의 단어이니 의미 역시 하나다.

●팽이가 돌아간다. →회전하다.
●2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죽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한다. →귀환하다.

‘돌아가다’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돌다’와 ‘가다’가 합쳐져 만들어졌겠지만 하나가 돼 머릿속에 실렸을 때는 ‘돌다’, ‘가다’ 각각의 단어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이 이 단어가 가진 ‘회전하다, 죽다, 귀환하다’의 의미다. 중요한 것은 ‘돌아가다’가 있다 해서 ‘돌아 가다’라는 표기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머릿속 사전에는 ‘돌아가다’라는 단어와 별개로 ‘돌다’와 ‘가다’라는 단어도 있다. ‘돌다’와 ‘가다’라는 단어를 그대로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앞 건물을 돌아서 쭉 가면 학교가 나온다.
→앞 건물을 돌아 가면 학교가 나온다.

이 문장에서 ‘돌다’와 ‘가다’는 각각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문장은 표현 그대로 ‘돌아서 가는’ 행동이 나타난다. 이들이 하나의 단위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돌다’와 ‘가다’ 사이에 ‘돌아서 쭉 가면’처럼 ‘-서’나 ‘쭉’ 같은 것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에도 주목해 보자. 이들이 하나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뚜렷이 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돌아가다’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무엇이 개입하면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

●팽이가 돌아서 쭉 간다.
●2년 전 할머니가 돌아서 멀리 가셨다.
●고향에 돌아서 쭉 가길 원한다.

사전에는 ‘돌아가다’만 나오지 ‘돌아 가다’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돌아가다’라는 띄어쓰기만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생각은 맞춤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가 맞춤법을 배우는 이유는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다. 정확한 표현은 단어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어를 모아 문장을 만들고, 문장들이 모여 단락을 구성해 전체 글을 구성한다. 맞춤법을 단어 차원으로만 이해해서는 어려운 단어 몇 개의 표기만을 알게 될 뿐이다. 지엽적인 문법 정보를 익히는 데 그친다는 의미다. 보다 더 큰 단위에서 단어들의 배열에 관심을 가져야만 우리말의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본질적 특성에 입각해 맞춤법을 생각해야 정확한 언어 표현을 할 수 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띄어쓰기#언어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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