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트레이시 크라우치’와 외로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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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내가 위로해줄게/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내가 눈물이 되리/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가수 윤복희가 부른 ‘여러분’(1979년)의 노랫말입니다. 오래전 노래이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외로움을 타는 것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일까요. 우리 인간은 수많은 문학 및 예술작품, 노래를 통해 외로움에 접근했지만 개인의 숙명으로 당연시했습니다. 개인 성향과 상황에 따라 외로움을 타는 정도가 다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 초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시민사회장관(사진)을 ‘외로움 문제’를 담당할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겸직 임명했습니다. 그간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외로움’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빈부 격차와 실업 문제 등은 진작부터 사회적 문제로 보고 정부가 개입하고 있지만 이제 외로움 문제도 개인의 영역으로 놔두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생긴 듯합니다.

지난달 10일 영국에서 발표된 ‘외로움에 대한 실태 조사’(2016∼2017년)가 주목을 끕니다. 크라우치 장관 주도로 사회적 고립과 단절, 그리고 외로움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 16세 이상 인구의 5%가 외로움을 항상, 자주 느끼고 있으며 16%는 때때로, 2%는 가끔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리서치에서 지난달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가 눈에 띕니다. 응답자의 26%가 항상,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로움 문제도 이제 남의 문제가 아닌 것이죠. 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감과 외로움은 서로 반비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즉,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이 클수록 행복도가 낮다는 겁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 병리 현상과 일탈로 이어져 무질서가 증가합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성별 차이는 유의미하지 않았지만 젊은 세대, 미혼자, 1인 가구 등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1909∼2002)은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1950년)’이라는 개념으로 현대인의 외로움에 접근했습니다. 대중사회를 살아가는 대중은 모래알같이 유대가 단절된 채 단지 모여 있는 꼴이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결속력’이라는 사회학적 변수를 통해 자살 문제를 설명한 학자가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입니다. 뒤르켐의 ‘자살론’(1897년)에 따르면 자살은 개인 심리학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뒤르켐은 개신교 신자가 가톨릭 신자보다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사회 통합과 규제의 정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기혼보다 미혼이, 전시보다 평시에 자살률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분석합니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의 유대와 결속력이 인간의 외로움 정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가 개입해 적극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을 그리 낯설게만 볼 일은 아닌 듯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크레이시 크라우치#외로움#장관#사회적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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