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기업과 연계해 질 좋은 고구마 개발… 대형 마트 납품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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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원예학과 창업 프로젝트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학생들은 학교 내 조직배양실에서 여러 품종의 고구마 조직을 직접 배양한다. 학교기업 ‘더고구마’가 설립된 뒤의 이런 변화 덕분에 김미소씨(22·앞줄 왼쪽)는 곧 창업한다. 문아람 씨(24·여), 박형준 씨(24), 이민겸 씨(21·여)도 성공적인 취업을 준비 중이다(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학생들은 학교 내 조직배양실에서 여러 품종의 고구마 조직을 직접 배양한다. 학교기업 ‘더고구마’가 설립된 뒤의 이런 변화 덕분에 김미소씨(22·앞줄 왼쪽)는 곧 창업한다. 문아람 씨(24·여), 박형준 씨(24), 이민겸 씨(21·여)도 성공적인 취업을 준비 중이다(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맛과 영양 좋은 농산물이 얼마나 많은데 마트에서 아무거나 골라 사먹다니….’

농산물을 마트에서 사는 건 도시인에게 익숙한 소비 습관이자 식생활이다. 하지만 서울시립대 4학년 김미소 씨(22·여)와 장민정 씨(23·여)는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환경원예학과 학생으로서 관련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더 그랬다.

채소와 과일은 어떤 땅과 기후에서 어떤 방법으로 기르느냐에 따라 맛과 질이 달라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정보를 전혀 모른 채 마트에 있는 농산물을 그냥 사먹는다. 농가가 운영하는 직거래 사이트에서 농산물을 사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하지만 농산물을 직접 눈으로 못 보니 품질을 잘 신뢰하지 못한다.

‘소개팅을 할 때 믿을 만한 친구가 주선하면 안심하고 나가잖아? 원예학도가 직접 여러 농가에 가보고 훌륭한 곳을 추천해주면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믿고 사먹을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이 떠오른 김 씨와 장 씨는 농대생의 농산물 추천 사이트 ‘가봄’ 창업을 준비 중이다. 가봄은 원예학과 학생들이 직접 좋은 농가에 가본다는 뜻이다.

○ 학교기업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김 씨와 장 씨는 서울시립대 학교기업 ‘더고구마’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창업 아이템을 생각해냈다. 2012년 12월 시작한 더고구마는 무병주 생산 기술을 상용화시켰다.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 대다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재배된다. 식물 바이러스는 인체에 해를 끼치진 않는다. 하지만 매년 생산량과 품질이 떨어져 농가가 피해를 입는다.

더고구마는 식물생장촉진 미생물(바실러스 서브틸리스 JS균주)을 개발해 2015년 6월 특허를 냈다. 이 미생물은 고구마 조직배양묘가 병충해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한다.

김 씨와 장 씨는 더고구마에서 실습하며 사람들이 질 좋은 농산물을 먹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판매나 유통이 아니고 생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농가는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품질을 원예학도가 인증하면 소비자의 신뢰가 상승한다고 봤다. 사이트를 통해 주문한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므로 농가는 중간유통 수수료를 줄여 이득이다.

지난해 2학기, 김 씨와 장 씨는 더고구마와 연계된 창업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그리고 학교기업에서 창업 지원금을 받는 1호 팀으로 선정됐다.

두 학생은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농산물의 맛과 영양 기준표를 만들 예정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달까지 농가를 방문해 농민들을 인터뷰한다. 우수 농가를 찾아 계약을 체결한 뒤 사이트에 등록한다. 가봄 사이트의 도메인 등록은 이미 지난해 12월에 마쳤다. 올해 상반기(1∼6월)에 정식 판매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김 씨와 장 씨에게는 학교기업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아이템이 좋아도 훌륭한 농가를 발굴하지 못하면 창업은 실패다. 하지만 두 학생에게는 더고구마에서 무병묘를 받아 고구마를 공동 생산하며 상생하는 농가가 여럿 있다. 김 씨는 “우선 고구마로 시작해서 엽채류와 과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특허 내고 마트 뚫어 매출↑

더고구마의 지난해 매출은 4억2700만 원이었고, 올해는 10억 원을 예상한다. 학교기업 운영 초기에는 한 해 매출이 9000만 원 정도였다. 그때와 현재 더고구마가 판매하는 생산품은 동일하다. 고구마 생과와 고구마 말랭이.

하지만 2015년 교육부의 학교기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며 달라졌다. 더고구마 총괄책임자인 김선형 환경원예학과 교수는 “매년 2억2000만 원씩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며 “학교 투자금으로만 운영하던 때와 달리 연구와 홍보 활동을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업맨’이 되길 자처한 교수의 노력도 성공의 원동력이다. 학교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소비자들은 기술력을 불신해 학교기업 제품을 안 사고, 학교는 마케팅에 투자하지 않아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더고구마는 학교기업 최초로 홈플러스에서 상품거래 계약을 따냈다. 김 교수는 여러 차례 홈플러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3월부터 고구마 말랭이를 납품하고 있다. 더고구마는 소비자들이 지적하는 사항을 반영해 포장지를 세 차례 바꿨다. 시식 등 판촉 행사도 열심히 했다.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납품 시작 3개월 만에 매출액이 급격히 증가했다.

농민들에게 더고구마의 무병묘를 홍보하기 위해 김 교수는 꾸준히 농가를 찾았다. 수업은 월요일과 화요일로 몰고, 수요일부터는 차를 몰았다. 지난해 9∼12월 주행 거리가 2만2000km를 넘었다. 고구마 생과를 안정적으로 납품하기 위해 올 1월에는 서울청과와 판매 약정을 맺었다.

○ 실무 탄탄하니 창업·취업 쑥쑥

환경원예학과 학생은 1년 내내 더고구마의 조직배양실에서 고구마 조직배양묘를 키운다. 원윤희 총장이 지난해 설립한 식물공장에서 상추 양배추 치커리 같은 새싹채소 50가지도 기른다. 방학에는 여러 농가와 농촌진흥청 등에서 인턴십을 한다.

학교기업을 운영하기 전까지 이런 교육과정은 불가능했다. 김 교수는 “원예학과 학생인데 식물 한 포기 심을 줄 모르니 기업들로부터 ‘써먹을 데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실무능력이 탄탄해지니 취업의 질도 달라졌다. 농촌진흥청이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물론이고 바이엘과 듀폰 등 다국적 회사, 외국계 종자회사에 들어간다.

2호, 3호 창업팀도 곧 나올 예정이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학교가 학생들이 창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이건 분명히 학교와 교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기업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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