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의 듣고 치킨집 사장 됐습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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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이서연씨 ‘고려대-JP모건 창업 아카데미’ 1호점 문 열어

24일 서울 강동구 탈북민 이서연 씨(42·오른쪽에서 세 번째)의 치킨가게 현판식에 박태진 JP모건 대표(왼쪽)와 홍용표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염재호 고려대 총장(가운데) 등이 참석했다. 이 씨는 고려대 탈북민 창업아카데미 1기 수료생으로
 고려대와 JP모건의 지원을 받아 수료생 중 가장 먼저 창업에 성공했다. 고려대 제공
24일 서울 강동구 탈북민 이서연 씨(42·오른쪽에서 세 번째)의 치킨가게 현판식에 박태진 JP모건 대표(왼쪽)와 홍용표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염재호 고려대 총장(가운데) 등이 참석했다. 이 씨는 고려대 탈북민 창업아카데미 1기 수료생으로 고려대와 JP모건의 지원을 받아 수료생 중 가장 먼저 창업에 성공했다. 고려대 제공
이달 초 서울 강동구 양재대로의 한 시장 골목에 작은 치킨가게가 새로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꼬꼬 두 마리’. 쌀가루를 입힌 치킨 두 마리를 9900원에 준다는 의미를 담은 상호다. 20m² 남짓한 가게 안에는 조리공간과 음료수가 들어있는 작은 냉장고, 손님 8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2개가 있다. 24일 찾은 가게에선 사장 이서연 씨(42·여)가 끓는 기름에 쉴 새 없이 닭을 넣고 있었다. 뜨거운 기름 열기에도 불구하고 이 씨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 씨는 1998년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이다. 중국에 머물던 그는 자신만의 음식점을 차리겠다는 꿈을 안고 2004년 홀로 한국에 왔다. 2009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이 씨의 꿈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가게를 낼 돈은 물론이고 마땅한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고려대의 북한이탈주민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만나며 희망을 갖게 됐다. 고려대는 지난해 6월 새터민에게 창업교육 및 지원을 하는 ‘창업아카데미’를 열었다. 고려대는 2014년 12월 JP모건과 새터민 지원 협약을 맺고 2억5000만 원가량의 지원금도 확보했다. 이렇게 시작된 창업교육 프로그램에는 새터민 83명이 신청했다. 이 중 1∼3단계 교육을 모두 통과한 합격자는 8개 팀 11명. 사업성과 전문성을 검증받은 5개 팀이 사업을 시작했고 3개 팀은 준비 중이다.

새터민들의 창업 분야는 다양하다. 음식점과 카페 외에 무역업과 인테리어업, 노인요양센터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도 있다. 합격생들은 고려대에서 받은 체계적인 교육이 다양한 분야의 창업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이 씨의 가게 실내 디자인을 맡은 것도 인테리어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새터민 현모 씨(40)다.

이들이 창업에 도전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높은 벽도 있었다. 새터민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다. 창업아카데미 수료생 유진성 씨(29)는 “경기 안산시의 한 공장에서 1년 반 동안 일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견딜 수 없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창업자 황모 씨(30)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24일 이 씨의 가게에는 ‘고려대와 JP모건 창업아카데미 1기 1호점’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현판 제막식에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 박태진 JP모건 사장 등이 참석해 이 씨의 창업을 축하했다. 염 총장은 “새터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계속 희망을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1호점’이라는 사실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달라”며 “우리도 계속 탈북민을 도울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내 가게를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면서 “쌀가루를 입힌 치킨은 비싸다는 인식을 깨고 싶다. 저렴하면서도 맛있고 질 좋은 치킨을 만들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치킨#고려대#jp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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