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고려대 신임 총장 “새로운 미래 개척하는 지성 길러내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염재호 고려대 신임총장 인터뷰]

염재호 신임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 내내 ‘미래’라는 단어를 수없이 반복했다. 대학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대비하는 기관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에게 ‘대학 총장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염재호 신임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 내내 ‘미래’라는 단어를 수없이 반복했다. 대학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대비하는 기관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에게 ‘대학 총장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에 대학이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학이 처한 상황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낮은 취업률로 ‘실업자 양성소’라는 비판을 듣는가 하면, 대학 입시는 교육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받는다. 등록금을 낮추라는 사회적 요구를 받아온 대학은 이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처럼 대학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60)가 국내 대표적 사립대인 고려대의 제19대 총장으로 27일 취임한다. 염 신임 총장을 만나 한국 대학이 가야 할 길과 고려대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네 번 출마한 끝에 당선됐다. 총장이 되고자 한 이유는….

“고려대에서 학생, 교수로 40여 년을 생활했다. ‘미래 사회와 조직’이라는 과목을 20년간 강의했는데, 항상 ‘이 학생들이 20∼30년 후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총장으로서 한번 뛰어난 인재를 키워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축구 감독이 선수들을 데리고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CEO형 총장으로는 부족


―TV 시사토론 진행자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스타 총장’으로 불린다. 대중적 인지도가 총장직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부담도 크다. 스타 총장이라는 이미지로 승부를 걸 생각은 없다. 고려대가 ‘스타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할 일을 준비해왔다. 그동안 행정대외부총장, 국제교육원장, 기획예산처장 등의 보직을 지낸 경험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학 사회에 필요한 총장상은….

“과거 대학은 사회를 대변하는 지사(志士)형 총장을 원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국내외 무한경쟁 환경에 접하면서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상이 요구됐다. CEO형 총장은 대학의 효율적 운영, 양적 성장, 국제화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지만 2015년의 총장은 CEO형 총장을 답습할 수 없다. 무한 경쟁과 양적 평가가 가져온 피로감이 대학 사회에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양적 성장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대학, 격(格) 높은 대학,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 그렇기에 대학은 분명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새로운 총장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는 ‘개척하는 지성’을 양성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겠다.”

―‘개척하는 지성’이란….


“21세기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인 시대가 아니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진다. 한 자리에서만 낚시를 하는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며 낚시를 하는 시대라는 얘기다. 미국 서부 골드러시 시대 개척정신의 20세기 버전이 바로 실리콘밸리였는데, 이런 개척정신을 대학이 키워줘야 한다. 대학에서 하는 직업교육은 직업 현장에 나가면 금방 용도폐기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기초 체력이 튼튼한 사람을 키워야 한다. 개척하는 지성이란 어두운 미래를 바라만 보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열어가는 사람이다.”

직장인 진로재설계 프로그램 마련

―하지만 청년실업은 큰 사회적 문제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난을 호소하는데, 대학이 이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나.

“학생 입장에서 취업은 생계를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생의 과업이다. 고려대는 취업 실적이 좋은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결과적 수치에 만족하지 않고 취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실행하려고 한다. 각 전공에 따라 실제 직업과 관련된 역량이 뭔지, 이를 위한 교육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야 되는지를 대대적인 교육과정 개편으로 분명히 제시하겠다. 산학협력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고려대가 보유한 연구개발 능력을 활용해 첨단 융합연구를 활성화할 것이다. 덧붙여서 학생을 잘 가르치는 전통적 교육의 관점을 넘어서 이미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직장인, 실버 연령층의 진로 재설계를 위한 프로그램도 가동할 것이다.”

―대학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입시 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향후 고려대 입시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라 불리는 상위권 대학 입시가 사교육 문제를 심화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앞으로 입학처를 ‘인재발굴처’로 바꿀 계획이다. 단지 이름을 바꾼다는 게 아니라 고려대 입시 패러다임을 전향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고사화하고 대학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사교육 부담을 경감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래서 고려대는 전통적인 입시제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학생을 뽑는 자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국내외 곳곳에 숨어있는 인재들을 찾아다니는 능동적인 선발을 하겠다. 교수들이 스스로 자기가 길러낼 ‘자식’들을 뽑아보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농어촌 거주민, 북한이탈주민, 국가유공자 자녀 등을 인재로 키워낼 수 있는 특별입학전형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다.”

2020년 외국인 학생 20∼30% 목표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한 계획은….


“2004년에 고려대 국제하계대학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학생 수가 35명에 불과했는데 작년에는 1612명으로 늘었다. 해외 각국 학생들이 여름에 고려대를 찾아와 수업을 받고 있다. 향후 규모를 더욱 확대해 세계적인 국제여름학기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국제겨울학기 등 새로운 시도도 해나가겠다. 우수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고 장학금 확대, 한국어 프로그램 제공, 정착 및 생활지원을 통해 친한파 엘리트로 자랄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다. 이미 홍콩이나 싱가포르에는 외국인 비중이 50%에 이르는 대학이 많다. 고려대도 2020년까지는 20∼30%가 외국인 학생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년에 3학기를 하는 ‘유연학기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3월과 9월에 시작하는 전통적인 1년 2학기제는 학생과 교수들이 자기계발과 연구에 필요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 1년 3학기제를 도입하면 학생들은 필요에 따라 자기 발전을 위한 계획을 유연하게 세울 수 있다. 또 교수들은 두 개의 강의 학기를 선택하고 남은 학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는 여름, 겨울방학을 집중 활용할 수도 있고 정규 학기를 10주로 압축하는 방법도 있다.”

―대학 강의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3무(無) 정책’을 하려고 한다. 출석부, 상대평가, 시험감독을 없애겠다는 얘기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왜 대학에서 출석을 부르느냐’고 의아해한다. 우리나라는 초중고교를 다루듯 대학을 관리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평가를 하면 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을 받기에 유리한 과목만 찾아 듣게 되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시험 감독을 한다는 것은 커닝의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커닝을 할 수 있는 문제를 냈다는 것은 교수의 잘못이다. 커닝이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가 좋은 시험 문제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들도 정원 감축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저출산으로 인한 입학 자원 감소로 2017년부터는 대학 입학생이 대학 입학정원을 밑돌게 된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 평가 계획을 내놓으면서 정원 감축이 본격 진행될 것이다. 대학 등록금이 매년 동결되는 상황에서 재정적으로 더욱 어려워지겠지만 정부 방침에는 따라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 등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

○ 세종시에 제3캠퍼스 조성

―올해 개교 110주년을 맞는 고려대의 비전은….


“‘제2의 창학’을 준비하고 있다. 세종시에 제3캠퍼스를 조성해 약대를 이전하고 전문대학원, 사이언스파크, 초중고 국제학교, 전문 클리닉 등을 신설할 것이다. 첨단복합의료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국제적 첨단 의료 연구를 주도하겠다. 정릉캠퍼스의 보건과학대가 안암캠퍼스로 이전하는 것을 계기로 자연계 융합연구와 산학 연구가 활성화되도록 할 것이다. 인문사회계의 교육과 연구 기반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겠다.”

인터뷰=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정리=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염재호#고려대 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