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직업체험 갈 곳이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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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 2015년부터 전체 중학교의 70%로 확대되는데…

지난해 자유학기제를 시범 운영한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김모 씨(35)는 진로 체험을 할 기관을 섭외하느라 진땀을 뺐다. 체험 프로그램 내용이 좋다는 공공기관들은 이미 선착순 마감된 상태. 아이들의 관심이 높은 방송, 연예, 게임회사 등에도 연락해 봤지만 “마땅히 보여줄 게 없다” “바쁜 시간이라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연락이 뜸했던 대학 시절 친구가 영화계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부탁해 봤지만 실패. 일주일을 끙끙 앓은 김 교사는 결국 중견기업 연구원인 학부모를 통해 학생들과 기업 연구소를 다녀올 수 있었다.

한 학기 동안 교과수업을 줄이고 시험은 안 보는 대신 직업 체험 활동을 하는 자유학기제가 전체 중학교의 70%까지 확대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갈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사들은 직업 체험을 할 만한 기관이 부족한 데다 정보도 없다고 호소한다. 교육부는 지역별로 체험교육기관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크레존’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는 것이 교사들의 평가다. 크레존에는 2만여 개의 기관이 등록돼 있지만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소개하는 내용조차 제대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서울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의 크레존에는 노인요양병원, 복지관, 교회, 공원, 공설운동장 등 체험기관이라고 하기 어려운 시설들이 주로 등록돼 있다.

교육청에서 안내하는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체험교육 프로그램은 시간과 인원이 제한돼 있어 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직업교육 강사를 학교로 초빙하는 방법도 있지만 수준 높은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강사료를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이 2013∼2014년에 자유학기제를 시범 운영한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체험기관 섭외 경로를 조사한 결과 교육부를 통해 섭외한 기관은 2%, 교육청을 통해 섭외한 기관은 7.8%뿐이었다. 학교가 직접 기관을 수소문한 경우가 70.1%였고, 교사 개인 인맥 12.5%, 학부모 인맥 3.5%로 나타났다. 교육 당국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드물었다는 얘기다.

또 시범학교 1곳이 활용한 체험기관의 수는 대도시가 24.47곳인 데 반해 읍면 지역은 13.18곳에 불과했다. 읍면 지역은 가까운 직업 체험기관이 드물 뿐만 아니라 체험기관으로 이동할 때마다 버스를 빌려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학교들이 체험기관 섭외에 어려움을 겪는 틈을 타 직업교육 관련 업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최근에 교육업체 관계자들이 학교로 찾아왔다. 학생 1인당 1만 원에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해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자유학기제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정부가 지나치게 서둘러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농어촌 지역의 실태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자유학기제를 전면 시행할 경우 지역 간 교육 격차가 오히려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재익 교육부 공교육진흥과장은 “체험기관 부족과 지역별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연구를 계속 진행해 문제없이 제도가 정착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중학생 직업체험#자유학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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