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대판 TED 만든 사감선생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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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유시스템 구축 김태완 교수
“학생들 함께 공부해, 지식은 쌓고 스트레스는 줄였으면…”

서울대 기숙사 지식공유시스템인 ‘GKNet(지케이넷)’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기숙사생의 자해를 목격한 김태완 사감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탄생했다. 서울대 제공
서울대 기숙사 지식공유시스템인 ‘GKNet(지케이넷)’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기숙사생의 자해를 목격한 김태완 사감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탄생했다. 서울대 제공
지난해 11월 늦은 밤 한 남학생(21)이 서울대 기숙사(관악사)의 자기 방에서 왼쪽 손목을 흉기로 스스로 긋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붉은 피가 잘린 동맥에서 허공으로 마구 뿜어져 나왔다. 다행히 그는 “친구가 자살할 것 같다”고 한 동료의 빠른 신고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쾌활하고 친구가 많기로 유명했던 이 남학생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지 한동안 의문으로 남았다.

김태완 관악사 사감(52)은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날을 “놀라서 혼이 나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원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인 김 사감은 2012년 8월 기숙사 사감으로 부임한 이후 아무 사고 없이 말 그대로 ‘태평성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건 며칠 후에 입을 연 이 남학생의 사연을 듣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김 사감에게 “시골에서 올라온 탓에 공부를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는 건 더 서글펐어요”라고 털어놓은 것. 김 교수는 “솔직히 교수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겪는 학업 부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며 “이때부터 무한경쟁에서 비롯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사감의 늦은 고심은 장장 6개월여 만에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김 사감이 5000명에 이르는 관악사생 모두가 자기 지식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지식공유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한 것. 그는 “대학교수, 명사들의 강연을 누구나 어디서나 PC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볼 수 있는 미국 ‘테드(TED·무료 강연을 제공하는 비영리재단)’를 많이 참고했다”며 “서로 지식을 공유하면 학생들 사이의 학력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대 기숙사는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올 6월 지식공유시스템인 ‘GKNet(지케이넷)’을 공개했다. 수십 차례의 관계자 회의와 자본금 1000만 원이 필요했다. 대학 전체가 아닌 기숙사 단독으로 이런 시스템을 마련한 것은 국내 최초의 일이라 더욱 값지다는 게 김 사감의 설명이다.

김 사감은 “지케이넷이 활성화되면 지식나눔 실천을 통해 요즘 학생들에게 만연한 학업 스트레스와 이기심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관악사의 의미 있는 실험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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