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농악은 마을농악-연예농악-대동굿 형태로 구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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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선 인천풍물연구보존회 회장

노종선 인천풍물연구보존회 회장이 이달 9일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야외공연장에서 회원들과 함께 ‘인천읍내걸립농악’을 공연했다.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선보인 이 공연은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시연이기도 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노종선 인천풍물연구보존회 회장이 이달 9일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야외공연장에서 회원들과 함께 ‘인천읍내걸립농악’을 공연했다.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선보인 이 공연은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시연이기도 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이달 9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야외공연장에서는 인천의 뿌리와 같은 풍물 공연이 펼쳐졌다. 인천풍물연구보존회가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에서 행해지던 대동굿 형태의 농악인 ‘인천읍내걸립농악’(인천농악)을 선보였다.

이 농악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병에 맞서 싸운 김민선 인천부사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 경비를 모으기 위해 걸립(乞粒)패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치던 풍물이었다. 문학산은 비류백제 때 미추홀로 시작된 인천의 발상지였다. 문학산 자락에 있던 인천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는 제자리는 아니지만 복원된 상태다.

노종선 인천풍물연구보존회 회장(62)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인천에서 사물놀이를 보급하는 활동을 벌이다 사라져가던 인천농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인천국악협회 임원으로부터 처음 인천농악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형태를 찾아보니 다른 지방의 대동굿은 지신밟기, 두레농악의 성격이 강하지만 인천농악은 마을농악, 연예농악, 대동굿 형태로 구성돼 있다는 게 특이했죠.”

노 회장은 1994년 인천풍물보존회를 만들어 청소년 대상의 풍물 교육을 시작하면서 인천농악 복원 작업을 본격화했다. 노 회장은 “인천농악은 하루 종일 마을을 돌며 행해졌지만, 핵심적인 장면을 8과정으로 나눠 재현했다”며 “1시간 반 분량의 8과정 공연으로 축소했는데 앞으로 마을사람 앞에서 행하던 밤굿과 사당에서의 제례 풍물을 추가해 10과정으로 편성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제례 형식의 인천풍물은 문학산 봉수대 바로 아래에 있던 김민선 부사의 추모 사당인 안관당(安官堂)에서 이뤄졌다. 인천 주민들은 사당에 모신 ‘안관 할아버지’를 문학산 산신으로 여겨 매년 제례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문학산 정상 주위는 6·25전쟁 이후 미군부대와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50년 동안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보호지역이었다. 전장의 폭탄 피해와 군 시설 공사로 인해 안관당과 옛 성벽이 대부분 파손됐으나 군부대 이전으로 2015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돌로 지어졌던 안관당은 터만 남아 있다.

노 회장은 인천농악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2002년 한가위 풍물 큰잔치에서 재연 공연을 했고, 2008년 제15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참가해 아리랑상을 받았다. 2016년 제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는 일반부 동상을 수상했다.

노 회장에게서 풍물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인천에만 20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전문 풍물단원으로 성장한 30명가량이 5팀을 이뤄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인천풍물연구보존회에서는 실버팀, 주부팀, 직장인팀, 청소년팀이 매주 한 차례 이상 풍물 연습을 하고, 정기 공연에도 나서고 있다.

인천시는 인천농악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심의를 벌이고 있다. 노 회장은 “인천풍물이 인천시 무형문화재로 선정되면 마을 단합을 위한 대동굿 정신을 살려 시대에 맞는 공연 형태로 발전시켜 보겠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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