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대한제국 공사관이라면…” 총영사 당황하게 만든 학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4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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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학생들, 8·15기념 ‘우리 역사 찾아 만주로 연해주로’
여름방학 맞아 민족 발자취 찾는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

김좌진장군이 승리로 이끈 청산리전투를 기념하는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 충남도교육청체공.
김좌진장군이 승리로 이끈 청산리전투를 기념하는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 충남도교육청체공.
“총영사님께서 개항기 대한제국의 공사관이었다면 어떻게 활동하셨을까요?” “역사를 잊지는 말되 일본을 용서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한국 정부의 고려인에 대한 정책은 무엇인가요?”

지난 8월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충남고교 1학년생들이 주블라디보스톡대한민국총영사관의 이석배 총영사에게 던진 질문들이다. 대개 ‘외교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월급은 얼마나 받나’ 등의 일상적인 질문을 하리라 예상했던 이 총영사는 일순 당황해 했다. 전문가들도 쉽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었지만, 학생들의 ‘성숙한’ 질문에 적잖은 감동을 받은 듯했다. 이 총영사는 바쁜 영사 일정속에서 예정 시간을 훨씬 초과하면서까지 질문에 답변했다.

학생들은 충남도교육청(교육감 김지철) 소속 고등학교 1학년 학생 111명으로 구성된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단(총단장 서정문).’ 8·15광복절을 앞두고 여름방학을 이용해(7월 26일~8월6일)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중국의 동북 3성, 내몽고,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찾아 민족의 역사를 체험하는 대장정에 오른 ‘어린 용사’들이었다.

헤이그 밀사로 활약한 이상설유허비(러시아 우수리스크)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 이상설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한 독립지사이기도 하다. 충남도교육청 제공
헤이그 밀사로 활약한 이상설유허비(러시아 우수리스크)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 이상설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한 독립지사이기도 하다. 충남도교육청 제공
충남교육청이 매년 실시하는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은 학생들에게 중국과 러시아 일대에 산재해 있는 우리 민족의 지리, 문학, 역사 체험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에 대응하고, 평화와 번영의 통일 한반도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번 인문학기행단은 지난 4월에 발대식을 가졌으며, 이들은 각각 역사교류, 독립운동, 평화통일을 주제로 3개 기행단으로 편성하였고, 5~6월에 독서·토론·인문학 특강 등 사전활동과 1박2일 성장캠프 2회를 거쳤다.

역사교류단은 우리나라의 신석기,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와 관계가 깊은 요서, 내몽고 지역의 홍산문화, 요양 동경성, 집안 국내성, 발해의 상경용천부 등 역사교류와 관계 깊은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역사교류단에 참여한 김강이 학생은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은 시험을 보기 위해 역사를 암기하는 우리들에게 마음으로 역사를 느끼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임지혜 학생은 “조상들이 살던 역사적 현장에 와보니 중학교때 배운 역사와 고등학교 배운 역사가 달라 혼랍스럽다”며 우리나라 역사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인문학기행 독립운동단은 대일항쟁기 연해주와 만주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유적지(봉오동, 청산리) 및 안중근 의사 행적(단지동맹비, 하얼빈역, 여순감옥)을 찾아 기행하는 동안 나라와 민족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독립운동 기행단 차민솔 학생은 “많은 독립 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폭력에 분노하기도 하고, 독립투사들의 굳은 결의에 감동하고, 그분들을 향한 존경심과 역사의식을 키우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차민솔 학생은 또 “중국 현지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소개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행태를 직접 목격한 후 친구들과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구려의 유적인 장군분(중국 지안) 앞에서 기념 촬영한 충남고교 1학년생들. 충남도교육청 제공.
고구려의 유적인 장군분(중국 지안) 앞에서 기념 촬영한 충남고교 1학년생들. 충남도교육청 제공.
인문학기행 평화통일단은 한반도와 만주 국경(두만강, 백두산, 압록강)을 따라 탐방하면서 민족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화합을 논의했으며, 특히, 백산시 조선족학교를 찾아 민족교육의 실태를 알아보고, 학생들이 한 권 두권 모은 동화책 70여권을 기증했다. 평화교류단으로 참가한 배혜서 학생은 압록강 선상에서 북한 아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당장이라도 물에 뛰어 들어가 헤엄쳐서 그들을 안고 싶었다. 이렇게 서로 멀리서 쳐다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서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행사 실무을 맡은 충남교육청 임정규 장학사는 “이번 인문학 기행단은 중국 만주를 거쳐 육로로 러시아 연해주로 이어주는 코스로 짰는데,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자취을 직접 밟아본 학생들이 한국, 중국, 러시아가 함께 하는 중국 동북부 지역이 먼 외국이 아닌, 하나의 문화권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경험이 됐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8월말 성장캠프를 통해 인문학기행 동안의 탐구한 주제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고, 학생들의 생각을 모아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김지철 교육감은 “평소 교과서에만 보았던 우리 조상과 민족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번 기행을 통해 인문학적 감수성을 더욱 높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인재가 되어주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중국 옌지·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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