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길진균]청와대만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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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 취임 7개월이 지난 요즘, 청와대는 또렷이 보이는데 정부와 여당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왔다. 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추 대표는 11일 6박 8일 일정으로 다시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여야의 대치 국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 대표의 부재가 느껴지진 않는다.

국가적 위기가 터질 때면 해당 부처 장관의 활약상이 언론에 크게 부각된다. 국민의 관심도 집중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한 강만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랬다.

하지만 북핵 위기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주무 장관 중 한 명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활약상을 보도한 언론 보도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청와대 비서진의 움직임만 두드러진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중동 특사로 출국하자 난데없이 대북 접촉설이 터져 나왔다. 물론 청와대는 부인했다.

10일 공개된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세계 주요 43개국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경제 곳곳에서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빠르고 효율적인 구조조정, 성장동력 발굴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역할이 돋보인다는 평가 역시 별로 듣지 못했다.

국회와 정부의 존재감이 뚝 떨어진 사이 많은 국민은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지금까지 6만 건이 넘는 온갖 청원이 올라왔다.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이뤄진 청원도 여러 건이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6일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에 대해 ‘재심 불가’를 설명하며 “정부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도 주무 장관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부 여당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청와대에 가려 투명인간처럼 잘 보이지 않게 됐다.

당은 ‘자발적 소외’ 상태다.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사상 유례없이 50%를 넘었다. 문 대통령 효과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잘하고 있는 만큼 애써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과거에는 일반 국민도 어느 부처 장관이 누구인지 알 정도였는데, 지금은 당 대표인 저도 장관의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장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과 업무 능력이 꼭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장관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뇌리에 남는 스타 장관들이 없는 정부는 어딘가 불안하다. 지난 정부에선 각 부처가 시키는 대로 실행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무너지자 정부도, 새누리당도 함께 붕괴됐다.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의 스태프이다. 비서진이 전면에 서면 장관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리고 국정의 모든 부담을 대통령이 직접 지게 된다. 장수가 보초를 서는 군대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7개월 전 취임사에서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은 대통령과 청와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조두순 출소 반대#박상기 법무부 장관#비서진이 전면에 서면 장관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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