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1급 간부 부인의 정규직 탄탄대로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10월 27일 13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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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산하기관서 친·인척 정규직 전환 39건 확인…“밝혀진 건 조족지혈”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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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사장 권경업) 본부 소속 1급 고위 간부다. 그의 부인은 지난해 9월 7일 자연해설직무로 남편이 일하는 공단에 입사했고,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를 포함해 최근 3년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 가운데 기존 임직원과 친·인척 관계인 사람은 21명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서도 A씨 부인의 입사 시기는 제일 늦다. 21명 가운데 2017년 이후 입사자는 A씨 부인과 6급 직원의 부인(자연해설직무) 등 단 2명뿐이다. 특히 같은 직무 전환자 중에는 2004년에 입사한 직원도 2명이나 있어 A씨 부인과 14년의 터울이 있었다.

서울교통공사가 불을 지핀 친·인척 고용 특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각 공공기관 인사팀이 관련 자료를 공개할 때마다 특혜를 의심할 만한 사례가 속속 나타나는 식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국립생태원(원장 박용목) 역시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0월 22일 동아일보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장우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는 채용의 공정성 논란을 부를 만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일반직 4급인 B씨의 경우, 부인 C씨와 또 다른 친·인척 D씨가 모두 자연해설직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C씨와 D씨의 입사 시기는 각각 2016년, 2014년이다. B씨와 C씨, D씨 등 3명은 공단 내 같은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앞서 1급 간부 A씨 부인의 직무도 자연해설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이 올해 1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자연환경해설사 정규직의 경우 정년 60세 보장은 물론, 선택적 복지비와 명절휴가비 등을 포함해 연봉이 400만?500만 원 오른다. 1년 차 무기계약직의 급여는 신입 공채 사원의 9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원자 97.5% 정규직 전환

또 다른 공단 일반직 5급 E씨의 친·인척 3명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중 2명은 2008년 이전 입사자였으며, 직무도 각각 청소, 해설, 재난구조로 달랐다. 친·인척 정규직 전환자 21명 가운데 기존 임직원과 부부인 경우는 10명이었고, 3명은 기존 임직원의 딸이었다. 또 6명(28.5%)의 친·인척이 4급 이상 간부였다.

이에 대해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법과 상관없이 근무하고 있던 기간제 직원 모두에게 전환 자격을 주는 걸로 (내부적으로) 정하고 필기시험, 면접 등 공식 채용 절차를 밟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1월 3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총 775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전환에 응시해 756명이 부서장 추천, 자연공원법 평가, 면접 등 3단계 채용 절차를 통과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원자의 97.5%가 전환에 성공한 것. 이런 과정을 거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현원은 1244명이 됐다.

권경업 이사장은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자료 조사 준비 과정에서 (관련 사실들을) 알게 됐다”며 “확실히 파악해 전환 과정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원이 257명인 국립생태원에서는 최근 3년간 210명이 비정규직에서 공무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 중 8.6%인 18건이 기존 임직원의 4촌 이내 친·인척이었다. 그중 15건, 즉 30명은 부부관계였다. 나머지 3건(6명)은 각각 남매, 형제, 4촌 관계였다.

“공기업 전수조사 필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고용세습 의혹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동아DB]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고용세습 의혹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동아DB]
이 가운데 10명은 당초 기간제로 입사했고, 사내에서 정규직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뒤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부부나 형제가 기간제에서 공무직으로 동시 전환된 사례도 7건(14명) 발견됐다. 개중에는 지난해 4월 입사해 올해 4월 공무직으로 신분이 바뀐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15쌍 중 9쌍이 입사 후 결혼했다. 4쌍은 용역업체에서 근무하다 같은 날 전환됐다. 부부관계로 입사한 커플은 2쌍”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부부가 아닌 나머지 3건의 경우 국립생태원이 있는 충남 서천과 인근 지역인 전북 군산에 거주하는 직원들이다. 기존 임직원 추천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주지 인근 근무를 희망해 입사했다. 무기계약직 정원이 확보돼 전환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양 기관 모두 현원 대비 최근의 전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 그만큼 급격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과 올해 5월 총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이 사안을 이해할 단초가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부는 먼저 1단계(중앙행정기관, 자치단체, 교육기관,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공공부문 852개소에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까지 이들 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목표치는 20만5000명이다. 기관별 잠정전환계획 17만5000명에 추가 전환 여지가 있는 3만 명을 더해 나온 숫자다. 헌데 올해 하반기까지 목표치만 15만1000명에 달한다.

2단계 전환은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자회사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발표한 대상 기관만 600개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문화재단(105개)과 장학회(60개), 복지재단(32개), 지방의료원(30개),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자회사(47개) 등이다. 정부 스스로 “기관 운영 재원을 모회사에 의존하는 기관이 251개(41.8%)로 가장 많고, 자체 수입으로 운영하는 기관은 210개(35.0%)에 불과”할 만큼 재정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곳들이다.

정부는 “소요 재원은 기관별 자체 재원을 활용해 마련하고, 여력이 없으면 2019년 예산 집행 시까지 기존 근로 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최저임금법을 지키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를 두면서까지 ‘숫자 채우기 식’ 정규직 전환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인사실무를 총괄하는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시점에 기획재정부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정원을 정해줬다”고 말했다. 정부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정책을 밀어붙인 와중에 한편에서는 부작용이 잉태된 것이다.

이장우 의원은 “국립공원관리공단 1급 직원의 부인이 지난해 9월 임용되고 이후 정규직이 됐다는 게 이해될 수 있는 사안이냐”며 “서울교통공사에 이어 산하기관의 친·인척 채용비리가 드러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친·인척 관계를 8촌까지 확장하면 (채용비리가) 더 드러날 것”이라며 “공기업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정부 정책의 틈을 타 기존 직원들이 부인, 동생, 자녀를 대거 채용하며 나눠 먹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재석 신동아 기자 jayk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1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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