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수혈 쿠팡 ‘한국의 아마존’ 되나…로켓배송 활성화 ‘네트워크 효과’가 관건

  • 신동아
  • 입력 2019년 3월 27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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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조 원 유치
● 신용카드 월 거래액 1조 원 돌파
● 로켓프레시, 당일배송 등 유통 다각화 잰걸음
● 물류 배송료 줄이기에 사활 걸어
● 신세계·롯데 등 유통 공룡에 도전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왼쪽)과 김범석 쿠팡 대표. [쿠팡 제공]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왼쪽)과 김범석 쿠팡 대표. [쿠팡 제공]
“로켓배송 없이는 생활 자체가 힘들어요. 이제는 당일배송까지 가능하니 급할수록 쿠팡만 찾게 돼요.”

매출 기준 e커머스 업계 1위인 쿠팡의 진격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e커머스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최근 쿠팡의 월 거래액이 1조 원을 돌파했다. 3월 12일 앱분석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쿠팡에서 신용카드로만 2018년 12월 1조176억 원, 2019년 1월 1조515억 원이 결제됐다. 지난해 1월 카드 결제금액(5710억 원)과 비교해 84% 이상 늘었다. 여기에 무통장입금, 휴대전화 소액결제, 로켓페이 계좌이체 금액까지 합하면 쿠팡의 실제 월 거래액은 1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국내 e커머스 전체 시장의 성장률은 17% 정도 된다. 따라서 쿠팡의 성장속도는 e커머스 전체 시장과 비교해 5배나 빠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연달아 특가 행사를 펼치고 있는 위메프와 비교해도 확연하다. 위메프의 지난 1월 거래액은 5500억 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4% 증가했다.

하지만 쿠팡의 아킬레스건은 창사 이래 계속 증가하고 있는 영업 적자 규모다. 2015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 원) 투자를 받았지만 적자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7년 쿠팡은 6389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2018년 영업 실적은 아직 공시되지 않았지만(4월 공시), 업계는 최대 1조 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처럼 인공지능으로 물건 ‘피킹’

그동안 업계에서는 ‘쿠팡의 아성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도무지 적자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깨고 지난해 11월, 쿠팡은 소프트뱅크가 구성한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자받아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로써 쿠팡이 그동안 주장해온 ‘계획된 적자’에도 상당 부분 힘이 실리게 됐다.

쿠팡이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물류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맨 배송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포함해 전국 수십 개의 물류창고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 특히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배송 시스템 구축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쿠팡의 재고관리는 다른 오픈 마켓들과 비교해 차별성을 띤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하루에 최대 170만 개의 상품을 출고한다. 쿠팡에 따르면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하루 주문의 3분의 1 정도가 몰린다고 한다. 로켓배송이 가능한 품목은 540만여 개. 전국의 물류센터 전체 규모 또한 축구장 151개와 맞먹는다. 2016년 인천과 경기도 남양주 덕평에 지은 ‘메가물류센터’는 각각 9만9174㎡(약 3만 평)에 달한다. 또한 쿠팡은 내년까지 물류센터 규모를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아마존의 자동 물류 시스템. [AP=뉴시스]
아마존의 자동 물류 시스템. [AP=뉴시스]

이처럼 방대한 물류센터에서 신속하게 상품을 찾아 포장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쿠팡은 창고에서 물건을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랜덤 스토(Random stow)’ 시스템을 도입했다. 랜덤 스토는 ‘무작위로 넣는다’는 의미다.

전통적인 물류센터에서는 비슷한 품목별로 물건을 쌓아두고, ‘피킹(상품을 집어 오는 일)’ 직원이 멀리까지 가서 해당 물건을 가져와야 했다. 하지만 쿠팡은 같은 물건을 창고 여기저기에 일정 분량씩 진열해놓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을 통해 상품별로 입출고 시점과 주문 빈도, 물품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예측해 진열한다. 만약 분유와 기저귀를 같이 피킹해야 한다면, 인공지능이 두 물품의 위치와 직원의 위치를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알려준다. 이는 모든 상품의 위치와 입출고 현황이 실시간으로 추적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쿠팡맨 택배 단가 비싸지 않다?

쿠팡의 궁극적인 목표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아마존식’ 경영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고객의 소비 행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사업의 전 영역에 활용한다. 상품 추천은 물론이고 빠른 배송에도 데이터가 활용된다. 쿠팡 직원 중 40%가 개발자인데, 이들은 머신러닝 기반의 추천 시스템과 자체 물류, 배송 시스템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만든다. 이처럼 돈을 버는 족족 물류와 시스템 개발에 재투자하다 보니 수익은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쿠팡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네트워크 효과란 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 가장 큰 쇼핑몰에 자연스레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임 교수는 “아마존과 쿠팡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존은 네트워크 효과에 성공했고 쿠팡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라며 “현재 쿠팡의 가장 큰 매력이자, 소비자 유입의 주된 장치인 ‘빠른 배송’이 쿠팡의 영업이익을 갉아먹는 상황이 더는 지속돼서는 안 된다. 로켓배송을 담당하는 쿠팡맨의 택배 단가가 낮아지려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쿠팡 측은 “쿠팡맨의 택배 단가는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한때 쿠팡맨 택배 단가가 5000~6000원가량으로 높게 추정된 적이 있으나,지금은 과거와 다르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로켓프레시·쿠팡이츠로 사업 다각화
쿠팡은 지난해 10월 신선식품을 새벽에 배송해주는 ‘로켓프레시’ 서비스를 개시했다. [홍중식 기자]
쿠팡은 지난해 10월 신선식품을 새벽에 배송해주는 ‘로켓프레시’ 서비스를 개시했다. [홍중식 기자]

쿠팡이 수익 면에서 본궤도에 오르려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쿠팡은 최근 투자받은 2조 원을 바탕으로 물동량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켓와우클럽’을 들 수 있다. 로켓와우클럽은 일종의 멤버십 서비스로 여기에 가입하면 △로켓배송 총 주문금액이 1만9800원을 넘지 않아도 무료로 배송해주고 △로켓배송으로 받은 물건을 30일 이내에 무료로 반품해주며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받을 수 있는 당일배송, 신선식품 새벽배송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90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체험 기간이 종료되면 자동으로 유료 전환된다. 월 회비는 서비스오픈특가로 당분간 2900원에 이용 가능하다. 로켓와우클럽 가입자 수는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비스 개시 1주일 만에 15만 명, 4개월 만에 160만 명을 돌파했다.

우유, 달걀, 과일, 정육, 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새벽에 배송해주는 ‘로켓프레시’도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다. 특히 여유롭게 장볼 시간이 많지 않은 직장여성들 사이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배송을 실시하는 온라인 e커머스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쿠팡도 지난해 10월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100억 원 수준이던 시장규모가 지난해에는 4000억 원대로 4년 만에 40배 이상 성장했다. 로켓프레시는 신선식품을 자정 이전에 구매하면 오전 7시까지 물건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물류비용이다. 현재 새벽배송을 실시하는 업체들은 쿠팡 외에도 마켓컬리, 동원 밴드프레시, 헬로네이처 등이 있다. 업계는 “앞으로 새벽배송 시장의 향방은 물류 경쟁력이 판가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제품의 신선도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신선식품 물류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면 수백억~수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 개발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반찬 배송 서비스 ‘배민찬’을 출시했다가 최근 접은 것도 불어나는 물류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쿠팡은 다른 업체들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거금을 쏟아부으며 꾸준히 물류 서비스를 확충해온 데다 대규모 투자금도 물류 경쟁력 향상에 요긴하게 쓰일 예정이다.

쿠팡이 올해 상반기 선보일 음식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도 업계 초미의 관심사다. 배달의 민족·요기요처럼 앱으로 주문을 받아 음식점과 배달원에게 전달해주는 서비스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배송요원으로 ‘쿠팡플렉스’와 같은 일반인이 활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쿠팡플렉스는 쿠팡이 지난해 8월 개시한 일반인 택배 서비스다. 일반인이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만큼 일하는 일종의 공유경제형 일자리다. 택배 차량은 주로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한다.

“이제는 성과 보여줘야 할 때”
쿠팡플렉스 서울동남권물류단지 송파물류센터. [홍중식 기자]
쿠팡플렉스 서울동남권물류단지 송파물류센터. [홍중식 기자]

쿠팡의 월 방문객은 1300만 명이다. 이들은 로켓배송으로 일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로켓프레시를 통해 신선식품까지 구매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쿠팡이츠’의 잠재적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다. 쿠팡은 음식 배달에서도 이미 쿠팡이 구축한 물류 라인과 운영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츠는 배달 파트너에게 최적의 배달 경로를 알려주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처음 일터에 투입되는 ‘쿠팡플렉스’도 배송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통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장에서 얼마나 시스템대로 일이 진행되느냐다. 다른 배달업체들도 쿠팡이츠와 비슷한 기술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살벌한 배달 현장에서 배달기사들이 시스템대로 움직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배달기사에게 속도는 곧 돈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 곡예 운전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임일 교수는 “기존 물류 시스템이 탄탄한 상태에서 쿠팡이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 모두 성공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다른 업체들과 비교해 강력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치킨게임에 머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쿠팡은 여전히 낙관론과 비관론 중간 즈음에 존재한다. 유통과 물류 면에서 업계를 선도할 만한 인프라를 갖춘 건 사실이나 수익성 개선에 대한 비전이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2년 만에 투자금 1조 원을 소진했는데,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롯데와 신세계 등 전통적인 ‘유통 공룡’이 몰려오고 있다는 점 또한 쿠팡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와 롯데는 온라인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신세계는 2월 1일 온라인 통합법인 ‘에스에스지(SSG)닷컴’을 공식 출범했다. 신세계는 온라인 통합법인의 올해 매출 목표로 3조1000억 원을 제시했다. 롯데는 앞서 지난해 8월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8개 온라인몰을 통합한 ‘롯데쇼핑 이(e)커머스 사업본부’를 출범했다. 앞으로 5년간 3조 원을 투자해 2022년까지 e커머스 매출 20조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쿠팡의 잰걸음이 이번에는 과연 먹힐지, 그 성적표가 궁금하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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