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가조작 상습범, 주식 못사게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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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이르면 내년부터… 두 차례 이상 적발땐 최대 5년간 매수 금지 검토


#1. “우리 회사가 곧 해외 대기업과 대규모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대.”

한 상장회사의 계열사에서 해외 납품을 담당하던 A 씨는 최근 업무 중 이런 따끈따끈한 정보를 입수했다. 아직 공시되거나 언론에 보도되기도 전이었다. 그는 해외 거래처와 수시로 접촉하면서 내부의 고급 정보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회사 주식을 사들였고 가까운 직장 동료와 고등학교 동창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다. 이렇게 A 씨와 지인들이 부당하게 벌어들인 이익은 9900만 원이나 됐다.

#2. 상장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B 씨는 인수계약을 하자마자 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경영하게 된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B 씨의 인수계약을 도운 변호사와 금융회사 직원들도 B 씨의 회사 주식을 매수했다. 이들이 벌어들인 부당 이익을 계산하면 40억 원이 넘는다.

이르면 내년부터 A 씨나 B 씨처럼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사들여 부당 이득을 보거나 주가 조작을 한 사실이 두 번 이상 적발되면 최대 5년간 주식을 추가로 매수하는 것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불공정 거래를 두 차례 이상 하더라도 검찰에 고발되거나 과징금만 부과되고 있어 애꿎은 개인투자자들만 피해를 보는 ‘개미지옥’을 만든다는 지적이 많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미공개 정보, 시세 조종 등 주식시장에서 불공정 거래를 한 사실이 두 번 이상 적발된 재범자에 대해 주식 추가 매수를 최장 3년 또는 5년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에는 재범자의 주식 계좌를 아예 동결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계좌 동결은 지나친 처벌이라는 의견에 따라 수위를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말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인 제도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장기적으로 재범자에 대한 처벌을 법에 명시할 계획이다. 법 개정 이전에는 행정지도나 금융위원장 명령 등의 방식으로 제재를 강화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강력한 제재안을 꺼내든 것은 불공정 거래를 통해 주식시장을 혼란시키는 ‘악질 재범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1∼2017년 불공정 거래 행위로 제재를 받은 725명 중 2차례 이상 법을 위반한 사람은 116명(16%)이나 됐다. 특히 금융당국이 불공정 거래를 한 사람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해도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는 등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 재범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주가 조작 재범자를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홍콩 금융당국은 2008, 2009년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를 한 혐의로 미국 월가의 유명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황성국) 씨에 대해 5년간 홍콩에서 주식 거래를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캐나다 금융당국은 불공정 거래가 심각한 경우 영구적으로 증권 거래를 못 하도록 한다.

전문가들은 불공정 거래로 인한 시장의 피해 규모를 산출해 피해 정도에 따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습적으로 불공정 거래를 일삼는 사람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이들을 징벌적으로 처벌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주가조작#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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