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한방보따리]스트레스 홍수 속 ‘간담 서늘한’ 현대인엔 온담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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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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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의 인기가 뜨겁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들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운명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이용된다.

사도세자는 예민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어의가 사도세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기록에서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사람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쿵쿵 뛰는 증상이 있으며, 사람을 피하고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이야기만 나누려고 했다”라는 부분이다. 이렇게 소심하고 허약해 사람을 두려워하고 쉽게 놀라는 세자를, 영조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이런 성격에서부터 틀어져 버린 부자 관계는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임으로써 파국을 맞게 된다.

어쨌든 어의는 사도세자의 이런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온담탕(溫膽湯)을 처방한다. 온담탕은 말 그대로 담을 따듯하게 해 주는 약이다. 간담이 서늘해진 것을 따듯하게 해 정상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 담력(膽力)이 약해 깜짝깜짝 잘 놀라고 겁이 많고 잠을 잘 못 자는 증상 등에 처방된다.

“간담이 서늘하다”, “담이 쪼그라들었다”, “사람이 담대해야지”, “담력 테스트”라는 말은 지금도 많이 쓰인다.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이런 표현은 한의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실제 간과 담은 소화기관으로 해독과 소화에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잘 놀라거나 겁이 많은 증상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사용한다. 현대적으로 보면 담이 서늘하다는 것은 자율신경계통과 심리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이런 증상은 단지 온담탕만으로는 개선될 수 없었던 것 같다. 타고난 성격이 소심했던 그가 비정한 권력 관계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들도 스트레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한의원에 내원하는 많은 환자가 소위 ‘간담이 서늘하다’는 증상을 호소한다. 스스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는 등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시험이나 발표 등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밤에 꿈을 많이 꾸고 쉽게 놀라는 등 상태가 심각하다면 온담탕과 같은 처방이 도움이 된다.

김한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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