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숙증 부르는 고도비만… 방치땐 성장판 일찍 닫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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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건강 리디자인/아이건강, 평생건강]11세 기철이의 몸무게 관리

11일 오후 박기철 군의 상태를 살펴보던 조자향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전임의는 “살이 많이 쪄서 배와 옆구리, 등의 피부가 많이 튼 상태”라며 “지금보다 6kg 이상 감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1일 오후 박기철 군의 상태를 살펴보던 조자향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전임의는 “살이 많이 쪄서 배와 옆구리, 등의 피부가 많이 튼 상태”라며 “지금보다 6kg 이상 감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환이 또래보다 두 단계 더 커져 있네요. 뼈 성장도 만 13세까지 진행된 상태입니다. 살을 빼지 않으면 성조숙증으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박기철(가명·11) 군의 어머니 이모 씨(42)는 주치의인 조자향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전임의의 설명을 듣는 순간,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글썽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박 군은 주치의의 질문에도 단답형 대답 외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표정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막 고개를 돌리는 특이한 행동도 했다.

3월부터 동아일보의 ‘2015 건강 리디자인-아이 건강, 평생 건강’ 비만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 군은 한눈에 봐도 비만이 심각했다. 박 군은 키 156.5cm에 몸무게가 75.8kg으로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30.95인 고도비만. 몇 해 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제를 복용 중이다. 우울증도 조금 있다. 박 군의 ‘독특한’ 행동은 ADHD와 우울증 증상이었던 것.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받은 진료는 올 3월 이후 네 번째로 이뤄진 것이다. 첫 진료 이후 몸무게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키가 2cm가량 컸기 때문에 상태가 나빠졌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조 전임의는 “박 군은 비만 정도가 심각한 데다 인슐린 수치가 높고 성조숙증까지 나타났기 때문에 무조건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비만 계속되면 고혈압, 지방간, 당뇨 가능성

박 군의 인슐린 수치는 12.1이다. 정상치 0.9∼8.5보다 매우 높다. 간 수치도 59로, 정상인 40 이하보다 다소 높은 편. 콜레스테롤 수치는 168로 정상 범주에 들지만 또래에 비해선 높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박 군이 성인이 됐을 때 고혈압과 지방간, 당뇨병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박 군의 경우 어머니 이 씨가 임신성 당뇨병을 앓았고, 아버지와 조부모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또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고혈압, 외할아버지가 중풍을 앓는 등 가족력이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박 군은 고환이 또래보다 두 단계 커져 있고, 뼈 성장도 2년 가까이 더 진행된 상태다. 이 또한 비만이 원인이다. 체지방에 있는 비만 세포에서 분비되는 사춘기 관련 물질이 뚱뚱할수록 다량 분비돼 사춘기 시작을 앞당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럴 경우 초반에는 정상 아이들보다 빠르게 성장하지만, 성장판이 빨리 닫혀 최종 신장은 또래보다 작아진다. 또 성장호르몬은 지방을 태우는 일도 하는데, 비만일 경우 호르몬이 지방을 태우는 데 집중적으로 쓰이면서 성장이 덜 이뤄진다.

박 군은 부모가 모두 키가 큰 편이라 유전적으로 봤을 때 기대치가 178cm 이상이지만 지금의 비만 상태와 성조숙증이 이어진다면 170cm대 초반에 그칠 수 있다.

○ “한 달에 1kg씩 반드시 뺀다”

조 전임의는 “한 달에 1kg씩 반드시 뺀다는 목표로 식단과 운동,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하루 섭취량을 2100Cal로 유지하고 채소나 나물 위주로 먹어야 한다. 또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과 식이섬유 위주로 식단을 마련해야 한다.

살을 빼기 위해선 땀을 흘릴 수 있는 유산소 운동과 수영 등이 좋다. 여기에 키 성장을 고려한다면 농구와 배드민턴 등 점프 운동을 추천할 만하다. 성장판을 자극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운동은 집중력을 키우고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에 ADHD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박 군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비만이라는 점에서 운동을 오래하면 근육이나 관절에 무리가 될 수 있으니 지나치게 장시간 운동하는 건 피해야 한다. 실제로도 박 군은 자전거 타기와 탁구를 좋아하지만 1시간 이상 할 경우 발바닥 통증을 여러 번 호소했다.

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장호르몬은 하루 분비량의 약 60∼70%가 오후 10시에서 오전 2시 사이에 분비된다고 하니 10시 이전엔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다.

박 군은 ADHD와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간기능 개선제 등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전문의는 “약도 필요하지만, 어릴 적부터 지나치게 약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며 “식단 조절과 운동 등 자연 치유를 할 수 있는 방법도 같이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비만 어머니, “나부터 살 빼고 건강해지겠다”

이 씨 역시 비만이 심각했다. 박 군을 임신한 뒤 임신성 당뇨병이 나타났고 출산 이후 살이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계속 몸이 좋지 않았는데 최근 두 달 동안은 허리디스크와 손목 통증마저 생겨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

이 씨는 “아이의 비만을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나부터 살을 빼고 건강해져야겠다”며 “함께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식단을 조절하며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 [주치의 한마디]뚱뚱한 남자아이, 초등학교 입학무렵 고환 크기 살펴봐야 ▼


조자향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전임의
조자향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전임의
기철이는 첫 진료 때에 비해 간 수치가 올라갔지만 작은 범위이기 때문에 지방간 등을 의심할 상황은 아니다. 콜레스테롤도 정상 범위로 아직까지 위험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워낙 비만이 심하고 가족력 등으로 인해 고위험 상태인지라 성인이 됐을 때 고혈압과 지방성 간염, 성인 당뇨병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철이는 성조숙증마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사춘기는 보통 여아 8∼13세, 남아 9∼15세에 시작된다. 성조숙증은 남아의 경우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기 시작하고, 여아는 만 8세 이전에 유방이 발달하는 등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기철이는 고환이 또래보다 2단계가 더 커져 있다. 손 성장판 X선 검사 결과,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11세의 뼈 성장 상태를 보여야 하지만 13세까지 골 연령이 진행됐다.

성조숙증은 여아의 경우 가슴이 커지고 유방통이 나타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남아는 고환의 성숙도를 미리 확인하기 어렵다. 성조숙증으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여아는 70% 정도가 5∼9세에 오지만, 남아는 70% 정도가 10∼14세에 온다. 그러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남아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보호자가 함께 목욕하면서 고환의 크기를 살피는 것이 좋다.

비만인 여아도 성조숙증 발견이 늦다. 지방세포에서 여성호르몬을 분비해 사춘기가 빨리 오지만, 두꺼워진 피하지방으로 인해 가슴 망울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 성적 성숙이 이뤄지면 유두를 만졌을 때 통증이 생기거나 모양이 봉긋해지는 등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보호자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조자향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전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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