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66>용신, 존재와 운명의 거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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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능력을 적극 활용해야 ‘팔자’ 바뀐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용신(用神)은 사주명리학의 하이라이트다. 용신이란 내 사주의 태과불급을 순환시킬 수 있는 방편을 말한다. 쉬운 예로 사주에 ‘금수(金水)’ 기운이 많으면 순환이 잘 안된다. 금수는 수렴성이 강하기 때문에 견고하게 뭉치기 십상이다. 이걸 순환시키려면 당연히 목화(木火)지기로 발산을 시켜야 한다. 반대로 목화 기운이 강한 경우는 금이나 수의 기운을 빌려야 한다. 목화지기가 발달하면 표현력이 강해서 일단은 활발해 보이지만 대신 중심을 잃고 산만해지기 쉽다. 심하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을 수도 있다. 하여 금수의 기운으로 차분하게 수렴을 해주어야 한다.

물론 용신을 선택하거나 활용하는 데도 기본기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초식은 반복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반복은 순환의 죽음이다. 아니 반복 자체가 죽음이다. 암과 자폐증, 치매의 공통점은 이웃과의 단절이다. 세포 단위든 개체 단위든 일단 소통이 단절되면 모든 존재는 자기 동일성만을 증식하게 된다. 자기 동일성의 증식이 곧 반복이다. 반복의 늪에만 빠지지 않아도 인생은 살 만하다. 반복의 리듬에 차이의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용신의 출발이다.

따라서 어떤 유형의 팔자든 차이와 순환을 만들어내려면 일단 내가 가진 기운을 써야 한다. 몸, 재물과 능력, 마음, 이 세 가지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 많든 적든 높든 낮든. 뭐가 됐건 이것들을 기꺼이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좋은 운이 오긴 어렵다. 재물과 능력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서 팔자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또 마음을 꽉 채워버리면 운은 막혀 버린다. 요컨대 탁하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 찬 곳엔 복이 머무르지 않는다. 복을 받고 운을 맞이하려면 주변의 공기를 맑고 청정하게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한 다음에 자기만의 고유한 용신을 닦아야 한다. 그걸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의 습속과 동선, 감정의 흐름 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마침내 자신의 본래 면목과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하여 스스로 ‘명(命)을 운전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그런 점에서 용신이란 일종의 거래다. 존재와 운명, 그리고 우주 사이의 거래. 거래란 모름지기 ‘깔끔’해야 한다. 재물이든 사람이든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버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걸 까먹으면 용신은 부적이나 싸구려 술수로 전락하고 만다. 단언하건대, 그런 식의 거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공짜 점심’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 탐구’가 된다. 병뿐 아니라 삶의 모든 과정이 다 마찬가지다. 요컨대 비전 탐구를 하려면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구체적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인 셈이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몸과 우주#용신#사주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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