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65>대운(大運)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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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단위로 지배하는 운세… 사람마다 달라

여자 1호: 공동체 생활 10년,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느닷없이 재미교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덕분에 그간의 활동을 다 접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여자 2호: 대기업 디자이너로 10년을 근무하다 역시 40대 즈음해서 인문학 강의를 듣다가 ‘필’이 꽂혔다. 결국 회사도 때려치우고 공동체에 눌러앉더니 마침내 ‘공부의 달인’이 됐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믿을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저런 반전이 가능할까?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이런 게 기적일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리고 어떤 설득과 회유에도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인생의 행로가 펼쳐지는 것. 하지만 사주명리학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대운(大運)’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운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지배하는 운세다. 팔자가 평생을 함께하는 원형이라면 대운은 그 원형이 걸어가는 ‘시절 인연’이다. 사람마다 대운의 숫자는 다 다르다. 만세력에서 사주를 뽑으면 그 일주(日柱·생일에 해당하는 간지) 밑에 대운 숫자가 나온다. 숫자가 3이면 3세, 13세, 23세, 33세 등으로, 5면 5세, 15세, 25세, 35세 등의 순서로 대운이 바뀐다. 즉, 사람마다 대운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사주팔자 자체로부터 추출된다. 말하자면 팔자가 만들어내는 생극(生剋·상생과 상극)의 동그라미 안에 대운의 리듬이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팔자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의 주름, 이를 테면 ‘내재하는 외부’라고나 할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 생리학적으로 몸을 이루는 세포들도 최소 7년이면 완벽하게 물갈이를 한다. 그러니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 대운의 원리 또한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대운이 달라진다는 건 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배치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생은 본디 이렇게 변화를 겪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의미가 아닐까. 성인이 되고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죽 안정감 있게 갈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오산이 아닐까.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그렇게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운을 알면 느긋하게 전략을 짤 수 있다. 역사 속 영웅재사들이 잘 보여주듯이 시절 인연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어떤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 반대로 시절 인연을 제대로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일이 술술 풀린다. 물론 거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통 일이 잘 풀릴 때는 대개 자기의 능력 덕분이라 여긴다. 그래서 자만심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런 식의 행운이 계속 뒤따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다 대운이 바뀌어 만사가 막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탓하기 시작한다. 원망 아니면 한탄. 팔자타령의 원천이 바로 여기이다.

우주적 리듬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다만 끊임없이 변해갈 뿐이다. 누구도 이 변화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좋은 운도, 계속 나쁜 운도 없는 법이다. 대운 역시 오행의 스텝을 밟아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변화의 리듬을 능동적으로 탈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뿐. 대운이란 이 ‘무상성’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명리학적 키워드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몸과 우주#대운#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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