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외친다 “전업주부-며느리 이젠 사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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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까talk]‘주부 페미니즘’ 문화계 확산

‘일과 육아의 양립’에 치여 허둥대는 워킹맘들. 정작 회사를 관두면 ‘경단녀’ ‘전업충’ 딱지가 붙는다. 동아일보DB
‘일과 육아의 양립’에 치여 허둥대는 워킹맘들. 정작 회사를 관두면 ‘경단녀’ ‘전업충’ 딱지가 붙는다. 동아일보DB

#1. “경단녀? 그거 경단 만드는 떡 전문가 말하는 건가요?”

몇 년 전 회사를 관둔 이주희 씨(48)는 ‘경단녀’란 딱지에 이렇게 되묻는다. 출산 및 육아로 인해 집으로 강제 소환당한 여성들의 경력을 사회가 잘라 먹는 데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이런 경험담을 ‘딸로 입사, 엄마로 퇴사’(니들북)란 책으로 펴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다움’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커지는 가운데, 그동안 부조리에 부대껴 온 기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며느라기’ 페이스북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다움’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커지는 가운데, 그동안 부조리에 부대껴 온 기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며느라기’ 페이스북

#2. 시댁 중심의 불합리한 결혼 문화를 민사린과 무구영이란 커플을 통해 다룬 웹툰 ‘며느라기’는 요즘 공분의 장으로 번지고 있다. “무구영 같은 남자는 답이 없다” “이 부부가 반드시 이혼하길 바란다” 같은 아줌마들의 ‘이혼 청원’이 빗발친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높아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최근 이른바 ‘주부 페미니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뿌리 깊은 ‘생활 속 성차별’에 반기를 든 기혼 여성들의 목소리가 문화계 전반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관련 콘텐츠도 활발히 창작되고 소비된다.

특히 30∼50대 기혼 여성들 얘기는 최근 책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어쩔 수 없이 참고 살던 평범한 우리네와 닮았다. 김영주 씨(53)는 9남매 장남과 결혼하고 24년간 시집살이를 견디다 ‘시월드’에 사표를 던졌다. 그 시간 동안 느낀 점을 2월에 ‘며느리 사표’(사이행성)란 책으로 써냈다. 김 씨는 “주말마다 가야 했던 시댁에 발을 끊고 안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밥 차리는 의무’를 벗어던지자 진짜 평화가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이달에 나온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마음의숲)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에서 ‘잠정적 배제 인력’이 되는 여성은 정작 전업주부가 되면 페미니즘을 논할 자격도 없는 ‘잉여’로 취급받는다. 담당 편집자 송희영 씨는 “지난해부터 인기였던 페미니즘 서적들이 올해 평범한 기혼 여성들의 ‘생활 속 고발’로 확장되는 추세”라며 “인터넷 연재 때부터 주부들의 댓글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더 이상 참고 살지는 않겠다는 주부들의 가치관 변화는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확연하다. 시어머니와 ‘맞짱’ 뜨는 며느리를 다룬 독립영화 ‘B급 며느리’(1월 개봉)가 화제를 모았고, 웹툰 ‘며느라기’는 팔로어만 23만 명이 넘는다. ‘미투 운동’처럼 심각한 성폭력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밥상 위’나 ‘사무실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부당함에 본격적으로 맞서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육아나 가사 전담, 시댁 중심 문화 탓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기혼 여성이 이런 움직임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부 페미니즘’의 진격에는 미투 운동 등을 통해 페미니즘 감수성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잘못된 관행에 거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일상의 민주화’가 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평론가인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한국 사회도 이미 여성의 역할이나 위상이 높아졌는데 그에 역행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완고하게 버티며 충돌을 빚어왔다”며 “오랫동안 묵어 있던 갈등이 사회 각계에서 일제히 터져 나오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남녀 대결이 아닌 인권 이슈로 풀길 주문했다. 구 교수는 “혁명처럼 터진 ‘미투 운동’이 실제 사회를 바꾸려면 결국 일상에서의 관행 변화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생활 속 페미니즘’은 의미가 크다”며 “일부처럼 ‘성대결’로 몰고 가면 본질을 왜곡할 수 있는 만큼, 보편적 인권 문제로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선희 teller@donga.com·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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