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집에는 없고 식당에만 있는 ‘가정식 백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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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봄날’의 백반. 석창인 씨 제공
수원 ‘봄날’의 백반.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가정식 백반’이라는 표현은 대체 어느 별에서 온 말일까요? 식당 밥에 식상한 이들에게 고향의 어머니나 돌아가신 할머니 손맛을 재현한 밥상을 차려주겠다는 의도겠지요. 하지만 그에 부응하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실제 가정식 백반이라는 표현은 예전엔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교토나 도쿄의 가정식 백반을 소개하는 책자들이 나오면서 널리 쓰인 듯합니다.

어느 소설가가 1990년대 중반 홍익대 근처에 차렸던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라는 식당이 아마도 가정식 개념을 도입한 첫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건설현장 인부들이 이용하는 이른바 ‘함바 식당’도 큰 범주에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이런 식당들은 무슨 찌개백반이니 구이백반이니 하는 메뉴들도 갖추고 있지만, 거의 매일 찾아오는 단골에게 정해진 메뉴 없이 당일 재료에 맞춰 주인 손이 가는 대로 차려주는 밥상이란 의미 아닐까요. 또한 집에서 먹는 것처럼 간이 강하지 않아야 하고요. 굳이 하나 더 하자면, 가정식 백반은 가격 저항이 작아야 합니다. ‘김영란법’에 저촉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의 가격이라면 그것은 가정식이 아니라 ‘사회식’ 백반이 되는 것이죠.


가정식 백반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면 대개 모든 찬의 간이 딱 알맞다는 겁니다. 실제 음식을 ‘잘한다 혹은 못한다’의 절대적 기준은 간이 맞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재료가 좋고 고난도 요리법으로 만들었다 해도 간이 맞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식당을 ‘계모가 차려주는 식탁’이라고도 말하지요. 요리를 정통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도 뭔가 만들기만 하면 간이 딱 맞는 ‘절대 손맛’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나 미국 유명 요리학교를 나온 요리사들도 간을 못 맞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재주는 다 타고난 자기 복이고 손재주라고 봐야 합니다.

이제 가정식 백반은 가정 대신 식당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과 가정이 해체된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런 안타까움은 비단 시인뿐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마음일 겁니다.

‘집 앞 상가에서 가정백반을 먹는다/가정백반은 집에 없고/상가 건물 지하 남원집에 있는데/집 밥 같은 가정백반은 집 아닌 남원집에 있는데/집에는 가정이 없나/밥이 없으니 가정이 없나?/혼자 먹는 가정백반/(중략)/꾸역꾸역 가정백반을 넘기고/기웃기웃 가정으로 돌아가는데/대모산이 엄마처럼 후루룩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신달자 시인 ‘가정백반’)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 봄날 백반 5500원. 경기 수원시 영통구 봉영로 1623 드림피아빌딩 2층. 070-4099-1424
○ 청담골 백반 8000원, 누룽지백반 9000원. 서울 강남구 선릉로148길 48. 02-543-1252
○ 라도집 백반 7000원, 생선백반 8000원.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0길 41-4. 02-790-2941
#백반#가정식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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