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추어탕, 쓰린 마음도 달래주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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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향미추어탕의 추어탕. 석창인 씨 제공
경북 청도 향미추어탕의 추어탕. 석창인 씨 제공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새벽녘 이불깃을 한껏 당기는 걸로 보아 가을은 이미 문틈으로 소리 없이 들어왔습니다. 이 계절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이름에 아예 가을 추(秋)가 들어간 ‘추어탕(鰍魚湯)’입니다.

추어탕은 특정 계절음식이 아니라서 어느 때라도 먹을 수 있고, 기력이 떨어졌을 때 원기 회복 건강식으로도 훌륭합니다. 원래 미꾸라지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면 국내 어디서도 만날 수 있는 민물 어종입니다. 지역마다 요리법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여행을 다니며 특색 있는 맛을 즐기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요즘 토종 미꾸라지가 귀해 외국산이 대세라고 하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남도 추어탕의 대표 선수격인 걸쭉한 남원식 추어탕,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것이 특징인 서울식 추탕, 시래기와 잡어를 갈아 넣은 경상도 청도식 추어탕, 전라도와 경상도의 혼합형인 거창식 추어탕, 충청도를 대표하는 금산 추부의 추어탕, 그리고 부추와 미나리로 맛을 낸 원주식 추어탕 등 지역별로 유명한 맛집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을 하였으니 앞으로 통일이 되면 이북 5도의 추어탕까지 섭렵해 보는 것이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뼈째 갈아 만들어 현대인에게 부족한 칼슘을 보충하는 데에도 좋습니다. 간혹 제피가루 맛을 추어탕 맛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비린내를 없애기 위한 제피를 조금만 넣는 것이 추어탕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낚시를 좋아하셨던 아버님께서 낚시도구 대신에 큰 양동이, 뜰채, 바가지 그리고 삽을 준비하는 날이면 미꾸라지 잡으러 가는 날인 줄 알고 좋아했습니다. 근교의 논둑 사이에 있는 도랑 흙을 삽으로 한번 뒤집으면 셀 수 없이 많은 미꾸라지가 꼼지락거렸는데 이들을 바가지로 퍼 담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물론 며칠 연속으로 똑같은 국이 밥상에 올라오는 괴로움은 따랐지요.

추어탕은 해장으로도 좋습니다. 쓰린 위장뿐 아니라 마음이 쓰릴 때도 효과가 있는 모양입니다. ‘감국화야 너도 알지?/사랑을 보내고 앓아도 놀은 붉게 타 번지고/눈앞이 캄캄해도 배는 고프고/그 농가 할머니 손맛 생각하면/사랑은 뒤끝이 슬퍼서 쓰네/추어탕은 속을 데워 쓴 옛일을 달래네’(감태준의 ‘추어탕’)라는 시도 있으니 말입니다.

미꾸라지와 미꾸리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미꾸리는 좀 작고 동글동글한데 요즘은 씨가 말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렇다고 미꾸라지보다 작은 놈을 미꾸리라고 말하면 옛날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미꾸스몰’ ‘미꾸미디엄’이라고 해야 요즘 아재입니다.
 

●용금옥 서울 중구 다동길 24-2, 02-777-1689. 추탕 1만 원, 미꾸라지무침 1만3000원

●원주복추어탕 강원 원주시 치악로 1740, 033-762-7989. 치악산한우 추어탕(통) 1만1000원, 추어탕(갈) 8000원, 숙회 4만 원

●청도 향미추어탕 경북 청도군 청도읍 뒷마1길 5-10, 054-371-2910. 추어탕 7000원, 미꾸라지튀김 2만 원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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