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기자의 지금, 여기]현인택 “北, 대선기간 핵-ICBM 도발 가능성…사드는 장기전 대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전 통일부 장관 현인택

10일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의 압력으로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면 더 이상 자주적인 안보정책을 펴는 국가로 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긴다면 중국이 과연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일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의 압력으로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면 더 이상 자주적인 안보정책을 펴는 국가로 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긴다면 중국이 과연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전승훈 기자
전승훈 기자
《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 한국의 정치 리더십 부재를 틈타 북한은 물론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국 간의 외교전쟁이 치열하다. 이달 9일 서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63)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향후 30년 가까이 지속될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현 교수는 이명박(MB) 정부 때 2년 8개월간 통일부 장관을 맡았고, 이후에는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장관 재직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자 대북제재안을 밝힌 ‘5·24조치’를 입안했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막판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퇴임 후 고려대 정외과 교수로 복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북한의 동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지난 10여 년 동안 3∼5월에는 북한이 항상 도발을 해 왔다. 한미 연합훈련도 있고 북한의 각종 기념일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행정부가 바뀌거나 한국의 대선이 있는 해엔 더 심했다. 이번에도 대선을 앞두고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동시에 할 개연성이 높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시위, 한국의 대선 구도를 교란시키기 위한 다목적 노림수가 될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처 움직임에도 더 도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북한은 강하게 나가야 산다고 생각한다. 민주국가인 한국이나 미국은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뀐다. 강경하게 해야 그 와중에 틈도 생기고, 내부 노선 갈등도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에게 내세울 정통성은 ‘위대한 핵국가’ 건설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드문제는 30년 장기전의 시작

현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사드는 북핵 방어용 ‘미사일 1개 포대’를 배치하는 문제일 뿐”이라며 “중국이 이를 확대, 왜곡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사드가 자국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인가.

“사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800∼900km에 불과해 중국 본토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든 사드 배치도 철수할 것이며, 중국이 우려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도 들어가지 않을 방침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드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하는 이유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중국으로부터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은 사드 문제를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는 탈냉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다. 미국과 중국의 격돌 과정에서 남중국해에서 중국-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 국가 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동중국해에서 중일 간 센카쿠 열도 영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중국은 한반도 사드 문제에도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본다. 중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외교의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가 탈냉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라고 한 이유는….

“미소 간의 양극체제가 무너지면서 지난 25년간 미국 단일체제가 이어져 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반면 지난 10여 년 동안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해온 중국이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국제정치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싸움은 1, 2년 안에 안 끝난다. 최소 30년 이상 갈 것이다.”

트럼프 ‘햄버거 담판’보다는 ‘압박’

―사드 배치가 미중 간의 문제라면, 중국은 왜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못 하는가.

“중국은 한국을 힘으로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2000년 ‘마늘파동’ 때 보여준 것이 아닌가. 17년 전처럼 압박하면 한국이 물러날 것이고, 그러면 한미 간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미국은 아직까진 버거운 상대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 벌써 미국이 북한과 거래해 온 중국 기업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대미 경제의존도도 엄청나다. 미국은 중국을 제재할 수단이 훨씬 많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외 이미지에 엄청난 손실을 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 수호자로 자처했는데, 이런 식이면 중국이 말과 행동이 정반대인 국가라는 이미지만 굳힐 뿐이다.”

―2010년 중국이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을 할 때 희토류 수출 금지, 관광 금지, 불매운동까지 벌였는데….


“당시 일본과 중국은 양국이 정말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영토 문제’를 놓고 맞부딪친 것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는 한국에는 치명적인 안보의 문제지만, 중국에는 사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중국과 일대일로 맞대응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일본은 일치된 국론 속에 단호한 대처로 1년 여 만에 이겨냈다.”

―한국의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중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다음 정권에서 철회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 문제일 뿐 아니라 한중 간, 한미 간, 미중 간의 글로벌 국제정치의 변화에서 살아남는 문제다. 앞으로 사드보다 더 큰 일이 계속될 것이다.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사드조차도 우리 국가 안보의 필요에 따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향후 더 큰 문제는 손도 못 댈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의 유불리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 교수는 15일 시작되는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3개국 방문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방문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형적인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때로는 매우 저돌적이고, 때로는 순간적인 판단을 통한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으로 보는가. ‘햄버거 담판’부터 ‘선제타격’론까지 다양한 예측이 나오는데….

“햄버거 담판은 물 건너갔다고 본다. 담판은 합리적인 딜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돼 있어야 한다. 지금 김정은은 그런 상대로 비치지 않고 있다. 선제타격도 ‘콜레터럴 대미지’(군사작전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민간인의 희생) 여파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선제타격이 아니더라도 무력시위 등 여러 가지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 자체도 북한에는 굉장히 심리적 압박을 줄 것이다.”

―지난 8년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당시 우리 정부와도 깊은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정책이다.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이 ‘우리는 같은 말(horse)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한 말에 ‘인내’의 뜻이 숨어 있다. 대화가 안 되더라도 인내하고, 압박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돼 온 북핵 문제가 100% 해결되지 못했다고 해서 오바마 행정부 탓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오바마는 미국의 금융위기, 재정위기 등 최악의 경제 상황을 물려받았고, 이라크전쟁 등 중동에 깊숙이 개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서도 빠져나오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지난 8년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전력투구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트럼프는 중동보다 대북정책을 우선시할 것으로 보는가.

“지금의 중동 상황은 부시-오바마 행정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이슬람국가(IS)도 상당히 약화됐고, 이란 핵협상도 파기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여력이 생긴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중국에 대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돈으로 사는 ‘정치쇼’ 정상회담 포기


―김정은 정권이 현 시점에서 김정남을 제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정은은 집권 후 리용호 총참모장, 고모부 장성택,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보위상 등 주요 정적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제 밖에 있던 ‘목의 가시’를 제거한 것이다. 김정남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래의 불안정성도 남겼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남 살해에 대해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려지게 된다.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장자인 이복형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것이다.”

현 교수는 “이명박 정권 초기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서 정상회담을 먼저 원했다”며 “막판에 한두 가지만 해결하면 성사될 수 있는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일 정권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정상회담을 여는 대가로 쌀, 비료, 현금, 아스팔트 피치 등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회담 결과 북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지는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회담을 여는 것만으로 대가를 지불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겉으로만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듯 보이고,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적 쇼’는 수없이 경험한 것 아닌가.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이런 관행은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켰다.”
  
현인택은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대학원 박사(국제정치학)
△ 고려대 정외과 교수(1995년∼)
△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 제35대 통일부 장관(2009∼2011년)
△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
△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현인택#대북정책#트럼프#사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