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한국에서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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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영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중에 ‘Room 101’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이 출연해 짜증나고 답답하거나 싫어하는 물건을 소개한 뒤 이를 ‘Room 101’로 추방하는 토크쇼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아직까지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 몇 개 있어 이를 Room 101로 보내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 나이다. 한국인들은 분명히 나랑 태어난 해는 같은데 나이를 물으면 한 살 또는 두 살이 더 많다고 대답한다. 대화의 마지막에 붙이는 문구는 바로 ‘한국식 나이’였다. 한국식 나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시작해 새해가 시작하면 생일에 관계없이 한 살을 더 먹는 식이다. 2016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2017년 1월 1일이 되면 두 살이 되는 거다. 이틀도 안된 아이에게 두 살이라니 영국인이 보기엔 정말 이해 안 가는 일이다.

한국식 나이를 왜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정의된 내용은 없지만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어엿한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거나, 한자 문화권에서는 0의 개념이 없어 1부터 시작했다거나 하는 여러 속설이 있긴 하다. 유래야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는 건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불편하고 헷갈리기만 하는 한국식 나이 계산법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관습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언급하고 싶은 건 무심한 운전 습관이다. 한국은 버스나 지하철 등의 체계가 매우 잘돼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나라다. 하지만 막상 자가 운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 위협,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한국의 운전자들은 사람을 우선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앞으로 지나가면 안전을 위해 차를 먼저 세우는 게 기본인데 한국에서는 골목에서 사람이 지나가도 차를 좀처럼 세우지 않는다. 하물며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져 있는 경우에도 쌩쌩 달려가는 차량을 본 적이 많다. 또 양보를 잘 하지 않는다. 좌회전을 위해 차로를 변경하려고 하면 이동하고자 하는 옆 차로의 차량은 앞차로 바짝 붙어버린다.

차로 변경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한국에서 방향키를 왜 ‘깜빡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깜빡하고 안 쓰니까 그렇지 않을까? 내가 독심술사는 아니니 제발 차로를 변경하려면 미리 방향키로 표시하고 가줬으면 한다.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차가 꽉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교통체증이 일부 몰상식한 운전자의 나쁜 운전 매너 때문이란 걸 알게 되면 화를 참을 수가 없다. 편의점이나 은행에 잠시 들르기 위해 도로 옆에 차를 세워놓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도로에 차를 잠시 정차해 놓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조금 더 편하게 업무를 보려는 운전자의 비양심 때문에 차로 하나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차로가 둘인 도로에서 차를 정차해 놓은 경우는 정말 난감해진다.

세 번째로 없애고 싶은 것은 바로 반찬이다. 외식할 때 내 머릿속에 항상 떠오르는 단어는 ‘낭비’이다.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시키면 반찬이 적어도 4, 5개씩은 나온다. 나는 이 많은 반찬들이 부담스럽다. 항상 그중에 하나는 거의 안 먹게 돼 음식물쓰레기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반찬이 셀프인 식당이 낫다. 아니면 회전초밥 식당처럼 회전 반찬을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식대비도 줄일 수 있고 힘들게 채소를 재배한 농부에게 미안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네 번째 싫은 점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일이다. 의미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재래시장을 살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효과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요리에 대해 몰라 집에서 주로 양식을 요리하게 되는데 재래시장에서는 양식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 재래시장은 다양한 물건이 없어 필요한 것을 못 사니 나에겐 큰 이득이 없으며 불편만 생긴다.

아웃사이더로서 한국 생활에 대해 개선점을 표현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할 말은 하고 싶다. 나이는 만으로, 운전은 양보하면서, 반찬은 적당히, 그리고 대형마트 휴일제도는 외국인들도 고려해서!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영국 예능#room 101#한국식 나이#운전 습관#반찬#대형마트 의무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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