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왜 귀화자를 외국인 통계에 포함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U-20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은 A조다. 조별리그 상대는 아르헨티나, 기니와 내 고향인 잉글랜드. 26일에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잉글랜드(또는 영국)의 경기가 열린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누굴 응원할 거냐고 물어본다. 붉은 악마인지 삼사자 군단인지. 내 답은 확실하다. 난 잉글랜드를 응원할 것이다. 한국에 산 지 10년이 넘었고 영주권도 얻었지만 그래도 국적은 아직 영국이니까.

그래도 법적으로 귀화하거나 이중국적을 신청할 자격은 되기 때문에 진정한 한국 사람으로 자처하기에 충분한지를 생각해봤다. 결론은 자격의 유무와는 별개로 신청자의 진심과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귀화해서 법적으로 한국 사람이 되더라도 사실 출입국관리사무소 이외에 각 정부 기관에서는 나를 아직도 외국인으로 볼 것이다.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를 계산할 때에는 유학생, 근로자, 결혼이민자뿐만 아니라 귀화자와 그들의 자녀들도 포함해서 41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발표한다. 행정 편의로 잡은 범주인지 모르겠지만 귀화한 지 오래된 분들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도 귀화를 한다고 해도 아직은 영원히 외국인으로 취급받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나는 외모가 백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백인이 한국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없다. 예를 들면 공항에서 입국할 때 백인이 내국인 카운터에 줄을 서 있다면 공항 직원은 100% 잘못 섰다고 생각하고 외국인 카운터로 안내하려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일 수도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문제는 한국 여권만 보여주면 쉽게 해결되지만, 다른 상황들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술집 입구에서 ‘No Foreigners(외국인 금지)’라는 표시가 보인다. 당연히 백인 얼굴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외국인은 안 된다”라고 할 것이다. 물론 주민등록증을 보여줄 수 있지만 공항과 달리 아마 보여줘도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상 그 표시는 국적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민족을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한국 사회는 아직 나를 한국 사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 봤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케이스는 소수이고 앞서 언급했던 공항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경우는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아마 인식의 부족인 것 같다.

물론 나도 한국 국적을 신청할 수 있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래도 책임감이 있어 만약 여기서 전쟁이 일어나도 딱히 도망갈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도 아직 없다.

한국 사람과 지내다 보면 “너는 이제 한국 사람 다 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아직, 또는 영원히 한국의 깊은 내면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못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가진 정서를 잘 모른다는 뜻이다. 할 수도 없지만 수능을 본 적도 없고, 군대에도 가지 않았다. 애국가도 가사는 알겠는데 손이 가슴 위에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많이 한국화된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영국의 현대 대중문화와 거리가 생기고 어느 정도는 오히려 영국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글로벌화 덕인지 한국 사람들도 점점 더 열린 사고를 가지는 것 같다. 내 사고도 역시 한국화되어가고 있으니 언젠가 중간에서 만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30여 년 전에 한 영국 정치인이 “이민자들이 영국에 잘 동화되고 있는지를 알려면 크리켓 경기에서 누구를 응원하는지 보면 된다”고 했다. 자신들의 원 조국을 응원하는지, 아니면 현재 살고 있는 나라를 응원하는지인데, 그 테스트를 한국에서 적용한다면 축구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탈락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u-20 월드컵#귀화#이중국적#외국인#인종차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