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에코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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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종류의 일간지를 읽는데 그래서 날마다 놀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더 생긴다. 최근에는 일회용 제품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기사들을 여러 번 보았다. 카페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컵들이 하루 5t 트럭 한 대 분량이나 되고, 종이컵은 안쪽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돼 있어서 쉽게 썩지도 않으며, 비닐봉지는 흙으로 변하는 데 무려 30∼40년이 걸린다는 믿지 못할,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이번에는 특히 유리병에 관해 읽고 더욱 놀랐다. 맥주나 소주병을 재활용하지 않고 버리면 흙으로 분해되는 데만도 100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니.

일회용 컵을 쓰는 게 언제부터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텀블러는 ‘에코백’으로 불리는 천 가방에 넣어둔다. 가방(bag)과, 생태나 환경과 관련됨을 나타내는 에코(eco)의 결합으로 만들어졌을 단어, 에코백의 시작은 영국의 한 디자이너가 천으로 만든 가방에 ‘I‘m not a plastic bag’(나는 비닐 가방이 아닙니다)이란 문장을 새기고 판매한 후부터라고 한다.

2년 전 가을, 프랑스 북부 도시 릴의 문화축제에 참가하게 된 적이 있다. 며칠 동안 시간을 함께 보냈던 통역가가 헤어지는 날 나에게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라면서 차곡차곡 접은 에코백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 역시 어깨에 그런 소박한 가방을 메고. 가볍고 실용적인 모양의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광장이나 서점, 시장에서 몇 년 사이에 부쩍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내 눈에는, 우리는 이 ‘환경’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고 있으며 그래서 소중히 보살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면 지나칠까.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 작은 에코백에 문학계간지 한 권을 담아 주었다. 책도 읽고 에코백도 어딘가에 다시 써 주겠지. 며칠 전에는 조카들이 수십 조각의 젱가 놀이 원목 조각을 담아놓았던 종이상자가 망가졌다면서 곤란해하기에 오래 써서 부들부들해진 천 가방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사이 꽤 다양한 에코백들을 갖게 되었다. 그 여러 개 중에서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것은 독일 예나대에 갔을 때 얻은 얇고 누런 천 가방이다. 종탑과 보리수나무가 밤색으로 프린트된. 다른 사람의 에코백을 볼 때도 앞뒷면의 글자와 그림들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 잘 아는 출판사 로고나 책 제목이 번듯하게 새겨진 가방을 발견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 가는 날에는 광목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에코백에 출석부와 책들을 넣어 갖고 다닌다. 언젠가 한 문학 기관에서 받은 가방이며 앞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Korea is coming.’
 
조경란 소설가
#에코백#i‘m not a plastic bag#나는 비닐 가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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